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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고전문학

채만식 탁류 전문

by 데니즈T 2020. 2. 27.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한강(漢江)이나 영산강(榮山江)도 그렇기는 하지만―---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小白山脈)이 제주도(濟州島)를 건너보고 뜀을 뛸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번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와 지리산(智異山)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長水)로 진안(鎭安)으로 무주(茂朱)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永同)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秋風嶺)과 속리산(俗離山)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西北)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좌우도(忠淸左右道)의 접경을 흘러간다.

그리고 북쪽 줄기는, 좀 단순해서, 차령산맥(車嶺山脈)이 꼬리를 감추려고 하는 경기(京畿) 충청(忠淸)의 접경 진천(鎭川) 근처에서 청주(淸州)를 바라보고 가느다랗게 흘러내려오다가 조치원(鳥致院)을 지나면 거기서 비로소 오래 두고 서로 찾던 남쪽 줄기와 마주 만난다.

이렇게 어렵사리 서로 만나 한데 합수진 한 줄기 물은 게서부터 고개를 서남으로 돌려 공주(公州)를 끼고 계룡산(鷄龍山)을 바라보면서 우줄거리고 부여(扶餘)로…… 부여를 한 바퀴 휘돌려다가는 급히 남으로 꺾여 단숨에 논메〔論山〕, 강경이〔江景〕까지 들이닫는다.

여기까지가 백마강(白馬江)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않은 처녀 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熊津〕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百濟)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창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향은 서서남(西西南)으로, 빗밋이 충청?전라 양도의 접경을 골타고 흐른다.

이로부터서 물은 조수(潮水)까지 섭쓸려 더욱 흐리나 그득하니 벅차고, 강 넓이가 훨씬 퍼진 게 제법 양양하다.

이름난 강경벌은 이 물로 해서 아무 때고 갈증을 잊고 촉촉하다.

낙동강이니 한강이니 하는 다른 강들처럼 해마다 무서운 물난리를 휘몰아 때리지 않아서 좋다. 하기야 가끔 홍수가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 市街地)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나 항구라서 하룻밤 맺은 정을 떼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 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 된다.

벗어붙이고 농사면 농사, 노동이면 노동을 해먹고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이 아득하기는 일반이로되,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도 또 달라 ‘명일(明日)’이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어디고 수두룩해서 이곳에도 많이 있다.

정주사(丁主事)도 갈 데 없이 그런 사람이다.

정주사는 시방 미두장(米豆場 : 米穀取引所, 期米市場) 앞 큰길 한복판에서, 다 같은 ‘하바꾼(절치기꾼)’이로되 나이 배젊은 애송이한테, 멱살을 당시랗게 따잡혀 가지고는 죽을 봉욕을 당하는 참이다.

시간은 오후 두시 반, 후장(後場)의 대판시세 이절(大阪時勢二節)이 들어오고 나서요, 절기는 바로 오월 초생.

싸움은 퍽 단출하다. 안면 있는 사람들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도 않는다.

지나가던 상점의 심부름꾼 아이 하나가 자전거를 반만 내려서 오도카니 바라보고 섰는 것이 그림의 첨경(添景) 같아 더욱 호젓하다.

휘둘리는 정주사의 머리에서, 필경 낡은 맥고모자가 건뜻 떨어져 마침 부는 바람에 길바닥을 대그르르 굴러간다. 미두장 정문 앞 사람 무더기 속에서 웃음 소리가 와아 하고 터져 나온다.

미두장은 군산의 심장이요, 전주통(全州通)이니 본정통(本町通)이니 해안통(海岸通)이니 하는 폭넓은 길들은 대동맥이다. 이 대동맥 군데군데는 심장 가까이, 여러 은행들이 서로 호응하듯 옹위하고 있고 심장 바로 전후 좌우에는 중매점(仲買店)들이 전화줄로 거미줄을 쳐놓고 앉아 있다.

정주사는 자리하고도 이런 자리에서 봉변을 당하는 참이다.

그러나 미두장 앞에서 일어난 싸움이란 빤히 속을 알조다. 그런 싸움은 하루에도 으레 한두 패씩은 얼려 붙는다.

소위 ‘총을 놓았다’는 것인데, 밑천 없이 안면만 여겨 돈을 걸지 않고 ‘하바’를 하다가 지고서 돈을 못 내게 되면, 그래 내라거니 없다거니 하느라고 시비가 되어, 툭탁 치고 받고 한다. 촌이라면 앞뒷집 수탉끼리 암컷 샘에 후두둑후두둑하는 닭싸움만치나 예삿일이다.

해서 아무리 이런 큰길바닥에서 의관깨나 한 사람들끼리 멱살을 움켜잡고 얼러붙은 싸움이라도 그리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한 사람이 아니면 별반 구경하는 사람도 없다.

다 알고 지내는 같은 ‘하바꾼’들은 싸움을 뜯어말리기커녕, 중매점 처마 밑으로 미두장 정문 앞으로, 넌지시 비켜 서서, 흰머리가 희끗희끗 장근 오십의 중늙은이 정주사가 자식뻘밖에 안 되는 애송이한테 그런 해거를 당하는 것을 되레 고소하다고 빈정거리기만 한다.

―---밑천도 없어 가지고 구성없이 덤벼들어, 남 골탕 멕이기 일쑤더니, 그저 잘꾸사니야!

―---정주산지 고무래주산지 인제는 제발 시장 근처에 오지 말래요.

―---저 영감님 저러다가는 생죽음하겠어!

―---어쩔라구들 저래!

―---두어 두게. 제 일들 제가 알아서 할 테지. 때애가면 둘 다 콩밥인걸.

정주사는, 멱살을 잡은 애송이의 팔목에 가 대룽대룽 매달려 발돋움을 친다. 목을 졸려서 얼굴빛은 검푸르게 죽고, 숨이 막혀 캑캑 기침을 배앝는다.

낡은 맥고모자는 아까 벌써 길바닥에 굴러 떨어졌고, 당목 홑두루마기는 안팎 옷고름이 뜯어져서 잡아 낚는 대로 주정뱅이처럼 펄럭거린다.

"여보게 이 사람, 여보게!"

"보긴 무얼 보라구 그래? 보아야 그 상판이 그 상판이지 별것 있나?…… 잔말 말구 돈이나 내요."

"글쎄 여보게, 이건 너무 창피하지 않은가! 이걸 놓고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세그려, 응? 이건 놓게."

"흥! 놓아 주면 뺑소니를 칠 양으루? 어림없어…… 돈 내요. 안 내면 깝대기를 벳겨 놀 테니……."

"글쎄 이 사람아! 이런다구 없는 돈이 어디서 솟아나나?"

"요―런 얌체 빠진 작자 같으니라구! 왜, 그럼 돈두 없으면서 덤볐어? 덤비기를…… 그랬다가 요행 바루 맞으면 올개미 없는 개장수를 할 양으루?…… 그리구 고 꼴에 허욕은 담뿍 나서, 머? 오십 전이야 차마 하겠나? 일 원은 해야지?…… 고런 어디서…… 아이구! 그저 요걸 그젓……."

애송이는 뺨을 한 대 갈길 듯이, 멱살 잡지 않은 바른편 팔을 번쩍 쳐들어 넓죽한 손바닥을 들이대면서 얼러 멘다. 정주사는 그것을 피하려고 고개를 오므라뜨리면서 엉겁결에 손을 내민다. 그 꼴이 하도 궁상스럽대서 하하하 웃음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그때 마침 ××은행 군산지점(群山支店)의 당좌계(當座係)에 있는 고태수(高泰洙)가, 잠깐 다니러 나왔는지 맨머리로 귀 위에 철필대를 꽂고 슬리퍼를 끌고 미두장 앞을 지나다가 싸움 열린 것을 보더니 멈칫 발길을 멈춘다. 그러자 또, 미두장 안에서는 중매점 ‘마루강(丸江)’의 ‘바다지(場立)’로 있는 곱사 장형보(張亨甫)가 끼웃이 밖을 내다보다가, 태수가 온 것을 보고 메기같이 째진 입으로 히죽히죽 웃는다.

"자네 장랫장인 방금 죽네, 방금 죽어, 어여 쫓아가서 말리게. 괜히 소복 입구 장가들게 되리!…… 어여 가서 뜯어말리라니깐 그래!"

모여 섰던 사람들은, 태수를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고, 모두 돌려다보면서 빙긋빙긋 웃는다.

태수는 형보더러 눈을 흘기면서도 함께 웃는다. 그는 형보 말대로 싸움을 말려 주고는 싶어도 형보가 방정맞게 여럿이 듣는 데서 그런 말을 씨월거려 놔서 차마 열적어 선뜻 내닫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요, 형보한테 빙긋 한번 더 웃어 보이고는 싸움 열린 길 가운데로 슬리퍼를 직직 끌고 건너간다.

"이건 무얼 이래요!…… 점잔찮게스리. 이거 노시오."

태수는 정주사의 멱살을 잡은 애송이의 팔목을, 말하는 말조보다는 우악스럽게 훑으려 쥔다.

정주사는 점직해서, 안 돌아가는 고개를 억지로 돌리고, 애송이는 좀 머쓱하기는 하면서도 멱살은 놓지 않는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나이깨나 좋이 먹어 가지구는……."

"노라면 놔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태수는 쥐었던 애송이의 팔목을 잡아 낚는다.

"……잘잘못은 누게 있던지, 그래 댁은 부모도 없수? 젊은 친구가 나이 자신 분한테 이런 행패를 하게."

몰아 대면서 거듭떠보는 태수의 눈살은 졸연찮게 팽팽하다.

애송이는 할 수 없이 멱살을 놓고 물러선다.

"그렇지만 경우가 그렇잖거던요!"

"경우가 무슨 빌어먹을 경우람? 누구는 그 속 모르는 줄 아우? 하바하다가 총 놨다구 그러지?…… 여보, 그렇게 경우가 밝구 하거던 애여 경찰서루 가서 받아 달래구려!"

"허어 참!"

애송이는 더 성구지 못하고 돌아서서 미두장 정문께로 가면서, 혼자 무어라고 두런두런 두런거린다.

정주사는 검다 희단 말이 없이 모자를 집어 들고 건너편의 중매점 앞으로 간다. 중매점 문 앞에 두엇이나 모여 섰던 하바꾼들은, 정주사의 기색이 하도 암담한 것을 보고, 입때까지 조롱하던 낯꽃을 얼핏 고쳐 갖는다.

"담배 있거들랑 한 개 주게!"

정주사는 누구한테라 없이 손을 내밀면서 한데를 바라보고 우두커니 한숨을 내쉰다.

여느때 같으면,

"담배 맽겼수?"

하고 조롱을 하지 단박에는 안 줄 것이지만, 그 중 하나가 아무 말도 없이 마코 한 개를 꺼내 준다.

정주사는 담배를 받아 붙여 물고 연기째 길게 한숨을 내뿜으면서 넋을 놓고 먼 하늘을 바라본다.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훌쭉 빠진 볼은 배가 불러도 시장만 해보인다. 기름기 없는 얼굴에는 오월의 맑은 날에도 그늘이 진다. 분명찮은 눈을 노상 두고 깜작거리는 것은 괜한 버릇이요, 그것이 마침감으로 꼴이 더 궁상스럽다.

못생긴 노랑수염이 몇 낱 안 되게 시늉만 자랐다. 그거나마 정주사는 잊지 않고 자주 쓰다듬는다.

정주사가 낙명이 되어 한숨만 거듭 쉬고 서서 있는 것이 그래도 보기에 딱했던지 마코를 선심 쓰던 하바꾼이 부드러운 말로 위로를 하는 것이다.

"어서 댁으루 가시오. 다아 이런 데 발을 딜여 놓자면 그런 창피 저런 창피 보기도 예사지요. 옷고름이랑 저렇게 뜯어져서 못쓰겠소. 어서 댁으루 가시오."

정주사는 대답은 안 하나 비로소 정신이 들어, 모양 창피하게 된 두루마기 꼴을 내려다본다. 옆으로 위로하던 하바꾼이 한번 더 선심을 내어 중매점 안으로 들어가더니 핀을 얻어 가지고 나와서, 두루마기 고름 뜯어진 것을 제 손으로 찍어매 준다.

미두장 정문 옆으로 비켜서서 형보와 무슨 이야기를 하느라고 고개를 맞대고 있던 태수가, 정주사가 서 있는 앞을 지나면서 일부러 외면을 해준다. 정주사도 외면을 한다.

태수가 저만치 멀리 갔을 때 정주사는 비로소,

"으흠."

가래 끓는 목 가다듬을 한번 하더니 ××은행이 있는 데께로 천천히 걸어간다. 다섯 자가 될락말락한 키에 가슴을 딱 버티고 한 팔만 뒷짐을 지고, 그리고 짝 바라진 여덟 팔자 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맵시란 누구더러 보라고 해도 시장스런 꼴이다.

푸른 지붕을 이고 섰는 ××은행 앞까지 가면 거기서 길은 네거리가 된다. 이 네거리에서 정주사는 바른편으로 꺾이어 동녕고개 쪽으로 해서 자기 집 ‘둔뱀이’로 가야 할 것이지만, 그러지를 않고 왼편으로 돌아 선창께로 가고 있다.

뒤에서 보고 있던 하바꾼이, 빈정거리는 말인지 걱정하는 말인지 혼자말로, 저 영감 자살하구 싶은가 봐? 그러길래 집으루 안 가고 선창으루 나가지, 하고 웃으면서 돌아선다.

앞뒷동이 뚝 잘려서 도무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게 정주사네다. 그러나마 식구가 자그마치 여섯.

스물한 살 먹은 맏딸 초봉(初鳳)이를 우두머리로, 열일곱 살 먹은 작은딸 계봉(桂鳳)이, 그 아래로 큰아들 형주(炯柱) 이 애가 열네 살이요, 훨씬 떨어져서 여섯 살 먹은 병주(炳柱), 이렇게 사남매에, 정주사 자기네 내외 해서 옹근 여섯 식구다.

이 여섯 식구가, 아이들까지도, 입은 자랄 대로 다 자라, 누구 할 것 없이 한 그릇 밥을 내놓지 않는다.

그러니, 한 달에 쌀 오통 한 가마로는 모자라고 소불하 엿 말은 들어야 한다.

또, 나무도 사 때야 하지, 아무리 가난하기로 등짐장수처럼 길가에서 솥단지밥을 해먹는 바 아니니 소금만 해서 먹을 수는 없고, 하다못해 콩나물 일 전 어치나 새우젓 꽁댕이라도 사먹어야지, 옷감도 더러는 끊어야지, 집세도 치러야지.

그런데다가 정주사의 부인 유씨(兪氏)라는 이가 자녀들에 대한 승벽이 유난스러, 머리를 싸매 가면서 공부를 시키는 판이다. 그래서 맏딸 초봉이는 보통학교를 마친 뒤에 사립으로 된 삼년제의 S여학교를 다녀 작년 봄에 졸업을 했고, 계봉이는 그 S여학교 삼학년에 다니는 중이고, 형주가 명년 봄이면 보통학교를 마치는데, 저는 인제 서울로 올라가서 어느 상급학교엘 다니겠노라고 지금부터 조르고 있고 한데, 그러고도 유씨는 막내동이 병주를 지난 사월에 유치원에 들여보내지 못한 게 못내 원통해서, 요새로도 생각만 나면 남편한테 그것을 뇌사리곤 한다.

이러한 적지 않은 세간살이건만, 정주사는 명색 가장이랍시고 벌어들인다는 것이 가용의 십분지 일도 대지를 못한다.

일찍이 정주사는, 겨우 굶지나 않는 부모의 덕에, 선비네 집안의 가도대로, 하늘천 따지의 천자를 비롯하여 사서니 삼경이니를 다 읽었다. 그러고 나서 세태가 바뀌니 ‘신학문’도 해야 한다고 보통학교도 졸업은 했다.

정주사의 선친은 이만큼 ‘남부끄럽지 않게’ 아들을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조업은 짙은 것이 없었다. 그것도 있기만 있었다면야 달리 찢길 데가 없으니 고스란히 정주사에게로 물려 내려왔겠지만 별로 우난 것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열두 해 전, 정주사가 강 건너 서천(舒川) 땅에서 이곳 군산으로 이사를 해 올 때, 그의 선대의 유산이라고는 선산(先山) 한 필에, 논 사천 평과 집 한 채 그것뿐이었었다. 그때에 정주사는 그것을 선산까지, 일광지지만 남기고, 모조리 팔아서 빚을 뚜드려 갚고 나니, 겨우 이곳 군산으로 와서 팔백 원짜리 집 한 채를 장만할 밑천과 돈이나 한 이삼백 원 수중에 떨어진 것뿐이었었다.

정주사의 선친은 그래도 생전시에 생각하기를, 아들을 그만큼이나 흡족하게 ‘신구 학문’을 겸해 가르쳤으니 선비의 집 자손으로 어디 내놓아도 낯 깎일 일이 없으리라고 안심을 했고, 돌아갈 때에도 편안히 눈을 감았다.

미상불 이십사오 년 전, 일한합방 바로 그 뒤만 해도 한문장이나 읽었으면, 사 년짜리 보통학교만 마치고도 ‘군서기〔郡雇員〕’ 노릇은 넉넉히 해먹을 때다.

그래서 정주사도 그렇게 했었다. 스물세 살에 그곳 군청에 들어가서 서른다섯까지 옹근 열세 해를 군서기를 다녔다. 그러나 열세 해 만에 도태를 당하던 그날까지 별수없는 고원이었었다.

아무리 연조가 오래서 사무에 능해도, 이력 없는 한낱 고원이 본관이 되고, 무슨 계(係)의 주임이 되고, 마지막 서무주임을 거쳐 군수가 되고, 이렇게 승차를 하기는 용이찮은 노릇이다. 더구나 정주사쯤의 주변으로는 거의 절대로 가망 없을 일이다.

정주사는, 청춘을 그렇게 늙힌 덕에 노후(老朽)라는 반갑잖은 이름으로 도태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처진 것은, 누구 없이 월급쟁이에게는 두억시니같이 붙어 다니는 빚〔負債〕뿐이었었다.

그 통에, 정주사는 화도 나고 해서 생화도 구할 겸 얼마 안 되는 전장을 팔아 빚을 가리고 이 군산으로 떠나 왔던 것이요, 그것이 꼭 열두 해 전의 일이다.

군산으로 건너와서는, 은행을 시초로 미두중매점이며 회사 같은 데를 칠 년 동안 두고 서너 군데나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정말 노후물의 처접을 타고 영영 월급 세민층에서나마 굴러 떨어지고 만 것이 지금으로부터 다섯 해 전이다.

그런 뒤로는 미두꾼으로, 미두꾼에서 다시 하바꾼으로.

오월의 하늘은 티끌도 없다.

오후 한나절이 겨웠건만 햇볕은 늙지 않을 듯이 유장하다.

훤하게 터진 강심에서는 싫지 않게 바람이 불어온다. 오월의 바람이라도 강바람이 되어서 훈훈하기보다 선선하다.

날이 한가한 것과는 딴판으로, 선창은 분주하다.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돛대를 웅긋중긋 떠받고 물이 안 보이게 선창가로 빡빡이 들이 밀렸다.

칠산바다에서 잡아 가지고 들어온 젖조기가 한창이다. 은빛인 듯 싱싱하게 번적이는 준치도 푼다.

배마다 셈 세는 소리가 아니면 닻 감는 소리로 사공들이 아우성을 친다. 지게 진 짐꾼들과 광주리를 인 아낙네들이 장속같이 분주하다.

강안(江岸)으로 뻗친 찻길에서는 꽁지 빠진 참새같이 방정맞게 생긴 기관차가, 경망스럽게 달려다니면서 빽빽 성급한 소리를 지른다. 그럴라치면 멀찍이 강심에서는 커다랗게 드러누운 기선이, 가끔가다가 우웅하고 내숭스럽게 대답을 한다.

준설선이 저보다도 큰 크레인을 무겁게 들먹거리면서 시커먼 개흙을 파올린다.

마도로스의 정취는 없어도 항구는 분주하다.

정주사는 이런 번잡도 잊은 듯이 강가로 다가서서 초라한 수염을 바람에 날리고 있다.

강심으로 똑딱선이 통통거리면서 떠온다. 강 건너로 아물거리는 고향을 바라보고 섰던 정주사는 눈이 똑딱선을 따른다.

그는 열두 해 전 용댕이〔龍塘〕에서 가권을 거느리고 저렇게 똑딱선으로 건너오던 일이 우연히 생각났다. 곰곰이 생각은 잦아지다가,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는 나았느니라 하면, 옛날이 그리워진다. 이윽고 기름기 없는 눈시울로 눈물이 괸다.

정주사가 미두의 속을 알기는, 중매점의 사무를 보아 주던 때부터지만 그것에 손을 대기는 훨씬 뒤엣일이다.

그가 처음 군산으로 올 때만 해도, 집은 내 것이겠다, 아이들이라야 셋이라지만 모두 어리고, 또 그런대로 월급도 받거니와 집을 사고 남은 돈이 이삼백 원이나 수중에 있어, 그다지 군졸하게 지내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한 해 두 해 지나노라니까, 아이들은 자라고 학비까지 해서 용은 더 드는데, 직업을 바꿀 때마다 월급은 줄고, 그러는 동안에 오늘이 어제보다 못한 줄은 모르겠어도, 금년이 작년만 못하고, 작년이 재작년만 못한 것은 완구히 눈에 띄어, 살림은 차차 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다가 마침내 푸달진 월급자리나마 영영 떨어지고 나니, 손에 기름은 말랐는데, 식구는 우그르하고, 칠팔 년 월급장사로 다시금 빚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정주사는 두루두루 생각했으나 별수가 없고, 그때는 벌써 은행에 저당 들어간 집을 팔아 은행빚을 추린 후에, 나머지 한 삼백 원이나를 손에 쥐었다. 이때부터 정주사는 미두를 하기 시작했었다.

미두를 시작하고 보니, 바로 맞는 때도 있고 빗맞는 때도 있으나, 바로 맞아 이문을 보는 돈은 먹고 사느라고 없어지고 빗맞을 때에는 살 돈이 떨어져 나가곤 하기 때문에 차차로 밑천이 졸아들었다.

그래서, 제주말〔濟州馬〕이 제 갈기를 뜯어먹는다는 푼수로, 이태 동안에 정주사의 본전 삼백 원은 스실사실 다 밭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삼백 원 밑천을 가지고 이태 동안이나 갉아먹고 살아온 것은 헤펐다느니보다도, 오히려 정주사의 담보 작고 큰돈 탐내지 못하는 규모 덕이라 할 것이었었겠다.

밑천이 없어진 뒤로는 전날 미두장에서 사귄 친구라든지, 혹은 고향에서 미두를 하러 온 친구가 소위 미두장 인심이라는 것으로, 쌀이나 한 백 석, 오십 원 증금(證金)으로 붙여 주면, 그놈을 가지고 약삭빨리 요리조리 돌려 놓아 가면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매일 돈 원씩, 이삼 원씩 따먹다가 급기야는 밑천을 떼고 물러서고, 이렇게 하기를 한 일년이나 그렁저렁 지내 왔다.

그러다가 다시, 오늘 이날까지 꼬박 이태 동안은, 그것도 사람이 궁기가 드니까 그렇겠지만 어느 누구 인사엣말로라도 쌀 한번 붙여 주마고 하는 친구 없고, 해서 마치 무능한 고관 퇴물이 ××원으로 몰려가듯이, 밑천 없는 정주사는, 그들의 숙명적 코스대로 하릴없이 하바꾼으로 굴러 떨어져, 미두장이의 하염없는 여운(餘韻)을 읊고 지내는 판이다.

그러나 많고 적고 간에 그것도 노름인데, 그러니 하는 족족 먹으란 법은 없다. 가령 부인 유씨의 바느질삯 들어온 것을 한 일 원이고 옭아 내든지, 미두장에서 어릿어릿하다가 안면 있는 친구한테 개평으로 일이 원이고 떼든지 하면, 좀이 쑤셔서도 하바를 하기는 하는데, 그놈이 운수가 좋아도 세 번에 한 번쯤은 빗맞아서 액색한 그 밑천을 홀랑 불어먹고라야 만다. 노름이라는 것은 잃는 것이 밑천이요, 그러므로 잃을 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미두꾼의 담보란다.

하바를 할 밑천이 없으면 혹은 개평이라도 뜯어 밑천을 할까 하고, 미두장엘 간다. 그렇지 않더라도 먹고 싶은 담배나 아편의 인에 몰리듯이 미두장에를 가보기라도 않고서는 궁금해 못 배긴다.

정주사도 어제 오늘은 달랑 돈 십 전이 없으면서 그래도 요행수를 바라고 아침부터 부옇게 달려나와 비잉빙 돌고 있었다.

그러나 수가 있을 턱이 없고, 그럭저럭 장은 파하게 되어 오고, 초조한 끝에,

"에라 살판이다."

고 전에 하던 버릇을 다시 내어, 그야말로 올가미 없는 개장수를 한번 하쟀던 것이 계란에도 뼈가 있더라고 고놈 꼭 생하게만 된 후장이절(後場二節)의 대판시세가, 옜다 보아란 듯이 달칵 떨어져서, 필경은 그 흉악한 봉욕을 다 보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정주사는 마침 만조가 되어 축제 밑에서 늠실거리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그는, 죽지만 않을 테라면은 시방 그대로 두루마기를 둘러쓰고 풍덩 물로 뛰어들어 자살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젊은 녀석한테 대로상에서 멱살을 따잡혀,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다 듣고 망신을 한 것이야 물론 창피다. 그러나 그러한 창피까지 보게 된 이 지경이니 장차 어떻게 해야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창피고 체면이고 다 접어 놓고, 앞을 서는 걱정이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어가나?"

이것은 아무리 되씹어도 별 뾰족한 수가 없고, 죽어 없어져서, 만사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생각지 않고 하는 도리뿐이다.

미상불 그래서 정주사는 막막한 때면,

"죽고 싶다."

"죽어 버리자."

이렇게 벼른다. 그러나 막상 죽자고 들면 죽을 수가 없고, 다만 죽자고 든 것만이 마치 염불이나 기도처럼 위안과 단념을 시켜 준다. 이러한 묘리를 체득한 정주사는 그래서 이제는 죽고 싶어하는 것이 하나의 행티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정주사는 흥분했던 것이 사그라지니 그제야 내가 왜 청승맞게 강변에 나와서 이러고 섰을꼬 하는 싱거운 생각에, 슬며시 발길을 돌이킨다. 그러나 언제 갈 데라야 좋으나 궂으나 집뿐인데, 집안일을 생각하면 다시 걸음이 내키지를 않는다.

어제 저녁에 싸라기 한 되로 콩나물죽을 쑤어 먹고는 오늘 아침은 판판 굶었다. 시방 집으로 간댔자, 처자들의 시장한 얼굴들이 그래도 행여 하고, 가장이요 부친인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판이다. 다만 십칠 전짜리 현미싸라기 한 되라도 사가지고 갔으면, 들어가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식구들이나 기운이 나련만 그것조차 마련할 도리가 없다.

정주사는 ××은행 모퉁이까지 나와 미두장께를 무심코 돌려다보다가 얼른 외면을 하면서,

"내가 네깐놈의 데를 다시는 발걸음인들 허나 보아라!"

누가 굳이 오라고를 할세 말이지, 그러나 이렇게 혼자서라도 옹심을 먹어 두어야 조금은 속이 후련해진다.

그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저 가끔 밑천 없이 하바를 하다가 도화를 부르고는 젊은 사람들한테 여지없이 핀잔을 먹고, 그런 끝에 그 잘난 수염도 잡아 끄들리고 그 밖에도 별별 창피가 비일비재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는, 내가 이럴 일이 아니라 차라리 벗어붙이고 노동을 해먹는 게 옳겠다고, 크게 용단을 내어 선창으로 나와서 짐을 져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일껏 용기를 내어 가지고 덤벼든 막벌이 노동도 반나절을 못 하고 작파해 버렸다. 힘이 당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반나절 동안 배에서 선창으로 퍼올리는 짐을 지다가 거진 죽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 길로 탈이 난 것이, 십여 일이나 갱신 못 하고 앓았다. 집안에서들은, 여느 그저 몸살이거니 하고 걱정은 했어도, 그날 그러한 기막힌 내평이 있었다는 것은 종시 알지 못했다.

그런 뒤로부터 막벌이 노동을 해먹을 생심은 다시는 내지도 못했다. 못 하고 그저 창피하나따나, 벌이야 있으나 없으나, 종시 미두장의 방퉁이꾼으로 지냈고, 양식을 구하지 못하는 날은 처자식들을 데리고 앉아 굶고, 이렇게를 사는 참이다.

입만 가졌지 손발이 없는 사람…… 이것이 정주사다.

진도라고 하는 섬에서 나는 개〔珍島犬〕하며, 금강산의 만물상이며, 삼청동 숲속에서 울고 노는 새들이며, 이런 산수고 생물이고 간에 천연으로 묘하게 생긴 것이면 ‘천연기념물(天然紀念物)’이라고 한다.

그럴 바이면 입만 가졌지 수족이 없는 사람, 정주사도 기념물 속에 들기는 드는데,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니까 ‘천연기념물’은 못 되고 그러면 ‘인간기념물(人間紀念物)’이겠다.

정주사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천천히 걸어 전주통(全州通)이라고 부르는 동녕고개를 지나 경찰서 앞 네거리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는 잠깐 망설인다. 탑삭부리 한참봉(韓參奉)네 집 싸전가게를 피하자면, 좀 돌더라도 신흥동(新興洞)으로 둘러 가야 한다.

그러나 묵은 쌀값을 졸릴까 봐서 길을 피해 가고 싶던 그는 도리어, 약차하면 졸릴 셈을 하고라도 눈치를 보아 외상쌀이나 더 달래 볼까 하는 억지가 나던 것이다.

정주사는 요새 정거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로 난 소화통이라는 큰길을 동쪽으로 한참 내려가다가 바른손편으로 꺾이어 개복동(開福洞) 복판으로 들어섰다.

예서부터가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금은 개복동과 연접된 구복동(九福洞)을 한데 버무려 가지고, 산상정(山上町)이니 개운정(開運町)이니 하는 하이칼라 이름을 지었지만, 예나 시방이나 동네의 모양다리는 그냥 그 대중이고 조금도 개운(開運)은 되질 않았다. 그저 복판에 포도장치(鋪道粧置)도 안 한 십오 간짜리 토막길이 있고, 길 좌우로 연달아 평지가 있는 둥 마는 둥하다가 그대로 사뭇 언덕비탈이다.

그러나 언덕비탈의 언덕은 눈으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비탈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콩나물 길듯 다닥다닥 주어 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인 것이다. 그 집들이 콩나물 길 듯 주어 박힌 동네 모양새에서 생긴 이름인지, 이 개복동서 그 너머 둔뱀이〔屯栗里〕로 넘어가는 고개를 콩나물고개라고 하는데, 실없이 제격에 맞는 이름이다.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 그리고 이편으로 뚝 떨어져 정거장 뒤에 있는 ‘스래〔京浦里〕’,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면적으로 치면 군산부의 몇십분지 일도 못 되는 땅이다.

그뿐 아니라 정리된 시구(市區)라든지, 근대식 건물로든지, 사회시설이나 위생시설로든지, 제법 문화도시의 모습을 차리고 있는 본정통이나, 전주통이나, 공원 밑 일대나, 또 넌지시 월명산(月明山) 아래로 자리를 잡고 있는 주택지대나, 이런 데다가 빗대면 개복동이니 둔뱀이니 하는 곳은 한 세기나 뒤떨어져 보인다. 한 세기라니, 인제 한 세기가 지난 뒤라도 이 사람들이 제법 고만큼이나 문화다운 살림을 하게 되리라 싶질 않다.

개복동 복판으로 들어서서 콩나물고개까지 거진 당도한 정주사는 길 옆 왼편으로 있는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가게를 넘싯 들여다본다. 실상은 눈치를 보자는 생각뿐이요, 정작 쌀 외상을 더 달라고 하리라는 다부진 배짱은 못 먹었기 때문에, 사리기부터 하던 것이다.

"정주사 안녕하시우?"

탑삭부리 한참봉은 마침 쌀을 사러 온 아이한테 봉지쌀 한 납대기를 되어 주느라고 꾸부리고 있다가 힐끔 돌아다보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 탑삭부리 수염에 푹 파묻힌 입에서 말이 한 개씩 한 개씩 따로따로 떨어져 나온다.

"네에, 재미 좋시우? 한참봉……."

정주사는 기왕 눈에 뜨인 길이라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정주사는 이 싸전과 주인을 볼 때마다 샘이 나고 심정이 상한다.

정주사가 처음 군산으로 와서 ‘큰샘거리〔大井洞〕’서 살 때에 탑삭부리네는 바로 건너편에다가 쌀, 보리, 잡곡 같은 것을 동냥해 온 것처럼 조금씩 벌여 놓고, 오도카니 앉아 낱되질을 하고 있었다. 거래는 그때부터 생겼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소리도 없이 바스락바스락 일어나더니, 작년 봄에는 지금 이 자리에다가 가게와 살림집을 안팎으로 덩시렇게 지어 놓고, 겸해서 전화까지 때르릉때르릉 매어 놓고, 아주 한다 하는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제 말로도 한 일이만 원 잡았다고 하니까, 내숭꾸러기라 삼사만 원 좋이 잡았으리라고 정주사는 생각한다.

털보 한서방 혹은 탑삭부리 한서방이 ‘한참봉’으로 승차한 것도 돈을 그렇게 잡은 덕에 부지중 남이 올려 앉혀 준 첩지 없는 참봉이다.

이렇게 겨우 십여 년간에 남은 팔자를 고치리만큼 잘 되었는데 자기의 몰락된 것을 생각하면 나도 차라리 그때부터 천여 원의 그 밑천으로 장사나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어, 그래 샘이 나고 심정이 상하던 것이다.

정주사는 나도 장사를 했더면 꼭 수를 잡았으리라고 믿지, 어려서부터 상고판으로 돌아다닌 사람과, 걸상을 타고 앉아 붓대만 놀리던 ‘서방님’이 판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하려고도 않는다.

"시장에서 나오시는군?…… 그래 오늘은……."

탑삭부리 한참봉은 방금 되어 준 쌀값 받은 돈을 가게 방문턱 안에 있는 나무궤짝 구멍으로 딸그랑 집어넣고,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돌아선다. 이 사람은 돈은 모았어도, 손금고 한 개 사는 법 없고, 처음 장사 시작할 때에 쓰던 나무궤짝을 손때가 새까맣게 오른 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놈을 가지고 돈을 모았대서 복궤라고 되레 자랑을 한다.

"……오늘은 재수가 좋아서, 우리집 묵은 셈이나 좀 해주게 되셨수?"

"재순지 무언지, 말두 마시우!…… 거 원 기가 맥혀!"

정주사는 눈을 연신 깜짝깜짝하면서 아까 당한 일을 무심코 탄식한다.

"왜?…… 또 빗맞었어?"

"전 백 환이나 날린걸!"

정주사는 속으로 아뿔싸! 하고 슬끔 이렇게 둘러댄다. 그는 지금도 늘 몇백 석씩 쌀을 붙여 두고 미두를 하는 듯이 탑삭부리 한참봉을 속여 온다. 그래야만 다 체면이 차려진다는 것이다.

"허어! 그렇게 육장 손만 보아서 됐수!"

한참봉은 탑삭부리 수염 속에 가 내숭이 들어서 정주사의 형편이며 속을 빤히 알면서도 짐짓 속아 주는 것이다.

알고서 말로만 속는 담에야 해 될 것이 없는 줄을 그는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럴 뿐 아니라 정주사와는 십 년 넘겨서의 거래에, 작년 치 쌀 한 가마니 값과 또 금년 음력 정월에 준 쌀 두 말 값이 밀렸다고 그것을 양박스럽게 조를 수는 없는 처지다. 그래서 실상인즉 잘렸느니라고 속으로 기역자를 그어 논 판이요, 다만 장사하는 사람의 투로, 지날 결에 말이나 한번씩 비쳐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묵은 것은 받지 못하더라도, 다시는 더 외상을 달래지 못하는 이익이 있대서…….

"거 참!…… 그놈이 바루 맞기만 했으면 나두 셈평을 펴구, 한참봉 묵은 셈조두 닦어 디리구 했을 텐데……."

정주사는 입맛을 다시고 눈을 깜짝거리다가 다시,

"……가만 계시우. 오래잖어서 다아 치러 주리다…… 설마 잊기야 하겠수? 아무 염려 마시구……."

정주사는 언제고 외상값 이야기면 첫마디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레 겁이 나서 미리 방패막이를 하느라고 애를 쓴다. 그는 갚을 돈이 없어 미안하다거나 걱정이라기보다도 졸리기가 괜히 무색해서 못 견디는 사람이다.

"……원, 요새 같을래서는 도무지, 세상이 귀찮어서…… 그놈 글쎄 번번이 시세가 빗맞어 가지굴랑 낭패를 보구 하니!…… 그러잖어두 자식들은 많구 살림은 옹색한데……."

"허! 정주사는 그래두 걱정 없지요! 자손이 번족하겠다, 무슨 걱정이겠수?"

"말두 마시우. 가난한 사람이 자식만 많으면 소용 있나요? 차라리 없는 게 맘이나 편치."

"그런 말씀 마슈. 나는 돈냥 있는 것두 다아 싫으니, 자식이나 한개 두었으면 좋겠습디다."

"아니야, 거 애여 자식 많이 둘 게 아닙디다."

"사람이 자손 자미두 없이 무슨 맛으로 산단 말씀이오?"

"건 속 모르는 말씀……."

"거 참 모르는 말씀을 하시는군!…… 정주사두 지끔 자녀간 하나두 없어 보시우?"

"허허…… 한참봉두 가난은 한데 쓸데없이 자식만 우쿠르르해 보시우?…… 자식두 멕여 살려야 말이지……."

둘이는 제각기 제게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제각기 저편이 하는 말은 속 답답한 소리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나이 사십이 넘어 오십줄에 앉았으되, 자녀간 혈육이 없다. 그는 그래서, 돈 아까운 줄도 모르고 이삼 년 이짝은 첩을 얻어 치가를 하고 자주 갈아 세우고 해보아도 나이 점점 늙기만 하지 이내 눈먼 딸자식 하나 낳지 못했다.

"어디, 오래간만에 한수 배워 보실려우?"

마침 심부름 나갔던 사환아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우두커니 넋을 놓고 섰던 탑삭부리 한참봉이 시름을 싹 씻은 듯 정주사더러 장기를 청한다.

"참 한참봉, 그새 수나 좀 늘었수?"

정주사는 그러잖아도, 장기나 두던 끝에 어물쩍하고 쌀 외상을 달래 볼까 싶어, 먼저 청하려던 차라 선뜻 응을 한다.

"정주사 장기야 하두 시언찮어서, 원."

"죽은 차(車) 물러 달라구 떼나 쓰지 마시우."

둘이는 이렇게 서로 장담을 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겟방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안채로 난 널문이 열리면서 안주인 김씨(金氏)가, 곱게 단장을 한 얼굴을 들이민다.

"아이! 정주사 오셨군요!"

김씨는 눈이 먼저 웃으면서, 야불야불하니 예쁘장스럽게 생긴 온 얼굴에 웃음을 흩뜨린다.

정주사도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하면서 곱게 다듬은 모시 진솔로 위아래를 날아갈 듯이 차리고 나선 김씨를 올려본다. 김씨는 남편보다도 나이 훨씬 처져 서른 살이 갓 넘었다. 그런데다가 얼굴 바탕이며 몸매가 이쁘장스럽고 맵시도 있거니와, 아기를 낳지 않아서 그런지 나이보다도 훨씬 앳되어 고작 스물사오 세밖에는 안 되어 보인다. 몸치장도 거기에 맞게 잘한다.

그래서 겉늙고 탑삭부리진 남편과 대해 놓고 보면 며느리나 소실 푼수밖에 안 된다.

"애기 어머니두 안녕허시구?…… 그리구 참……."

김씨는 깜빡, 긴한 생각이 나서 가겟방 앞으로 다가 들어온다.

"……댁에 큰애기가, 아이유 어쩌믄 그새 그렇게 아담스럽구 이뻐졌어요! 내 정주사를 뵈믄 추앙을 좀, 그리찮어두 흠씬 해드릴려던 참이랍니다!"

"거 무얼, 그저……."

정주사는 좋기는 하면서도 어색해서 어물어물하고, 김씨는 들입다 흔감을,

"글쎄, 허기야 그 애기가 저어, 초봉이던가? 응 그래 초봉이야…… 어렸을 때두 이쁘기는 했지만, 어느결에 그렇게 곱게 피구 그랬어요? 나는 요전번에 이 앞으루 지내문서 인사를 하는데, 첨엔 깜박 몰라보았군요! 거저 다두욱다둑해 주구 싶게 이쁘더라니깐요…… 내가 아들이 있다믄 글쎄 억지루 뺏어다가라두 며누리를 삼겠어! 호호호."

명랑하게 쌔불거리고 웃고 하는 데 섭쓸려 탑삭부리 한참봉도 정주사도 따라 웃는다.

"그러니 진작 아이를 하나 났으면 좋았지?"

탑삭부리 한참봉이 웃으면서 일변 장기를 골라 놓으면서 농담삼아 아내를 구슬리던 것이다.

"진작 아니라, 시집오던 날루 났어두 고작 열댓 살밖에 안 되겠수…… 저어 초봉이가 올해 몇 살이지요? 스무 살? 그렇지요?"

"스물한 살이랍니다!…… 거 키만 엄부렁하니 컸지, 원 미거해서……."

정주사는 대답을 하면서 탑삭부리 한참봉의 곰방대에다가 방바닥에 놓인 쌈지에서 담배를 재어 붙여 문다.

"아이! 나는 꼭 샘이 나서 죽겠어! 다른 집 사남매 오남매보다 더 욕심이 나요!"

"정주사 조심허슈. 저 여편네가 저리다가는 댁의 딸애기 훔쳐 오겠수, 흐흐흐흐……."

"허허허……."

"훔쳐 올 수만 있대문야 훔쳐라두 오겠어요…… 정말이지."

"저엉 그러시다면야 못 본 체할 테니 훔쳐 오십시오그려, 허허허."

"호호, 그렇지만 그건 다아 농담의 말씀이구, 내가 어디 좋은 신랑을 하나 골라서 중매를 서드려야겠어요."

"제발 좀 그래 주십시오. 집안이 형세는 달리는데 점점 나이는 들어 가구…… 그래 우리 마누라허구 앉으면 그리잖어두 그런 걱정을 한답니다."

"아이 그러시다뿐이겠어요!…… 과년한 규수를 둔 댁에서야 내남 없이 다아 그렇지요. 그럼 내가, 이건 지낼 말루가 아니라, 그 애기한테 꼬옥 가합한 신랑을 하나 골라 디리께요."

"저 여편네 큰일났군……."

장기를 딱 딱 골라 놓고 앉았던 탑삭부리 한참봉이 한마디 거드는 소리다.

"……중매 잘못 서면 뺨이 세 대야!"

"그 대신 잘 서믄 술이 석 잔이라우."

"그런가? 그럼 술이 생기거들랑 날 주구, 뺨은 이녁이 맞구 그릴까?"

"술두 뺨두 다 당신이 차지허시우. 나는 덮어놓구 중매만 잘 설 터니…… 글쎄 이 일은 다른 중매허구는 달라요. 내가 규수를 좋게 보구 반해서, 호호, 정말 반했다우. 그래서, 자청해설랑 중매를 서는 거니깐, 그렇잖어요? 정주사."

"허허, 그거야 원 어찌 되어서 서는 중매던 간에, 가합한 자리나 하나 골라 주시오."

"자아, 그 이얘기는 그만했으면 됐으니 인제는 어서 장기나 둡시다. 두시오, 먼점."

탑삭부리 한참봉이 장기가 급해서 재촉이다.

"저이는 장기라면 사족을 못 써요!…… 나 잠깐 나갔다 와요. 정주사, 천천히 노시다 가시구, 그건 그렇게 알구 계서요?"

"네에, 믿구 기대리지요."

"거 참, 나갈 길이거던 장으루 둘러서 도미라두 한 마리 사다가 찜을 하던지 해서, 고서방 먹게 해주구려?…… 요새 찬이 좀 어설픈 모양이더군그래?"

탑삭부리 한서방은 벌써 정신은 장기판으로 가서 있고 입만 놀린다. 고서방이란 이 집에 하숙을 하고 있는 ××은행의 태수 말이다.

정주사는 도미찜 소리에 침이 꼴깍 넘어가고 시장기가 새로 드는 것 같았다.

 

 

채만식의 탁류

 

채만식 탁류의 나머지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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