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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고전문학

고전소설 열녀춘향수절가 전문

by 데니즈T 2020. 2. 29.
숙종대왕(肅宗大王) 즉위(卽位) 초에 성덕이 넓으시사 성자성손은 계계승승하사 금고옥적은 요순시절이요 의관문물은 우탕의 버금이라. 좌우보필(左右輔弼)은 주석지신이요 용양호위는 간성지장이라. 조정(朝廷)에 흐르는 덕화(德化) 향곡에 퍼졌으니 사해(四海) 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려있다. 충신은 만조하고 효자열녀 가가재라. 미재미재라 우순풍조하니 함포고복 백성들은 처처(處處)에 격양가라.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으되 삼남의 명기로서 일찌기 퇴기하여 성가(成哥)가라 하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 연장사순을 당하여 일점 혈육(血肉)이 없이 일로 한이 되어 장탄수심(長嘆愁心)에 병이 되겠구나. 일일은 크게 깨쳐 옛사람을 생각하고 가군을 청입하여 여쭈옵되 공순히 하는 말이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 끼쳤던지 이생에 부부 되어 창기(娼妓) 행실 다 버리고 예모도 숭상하고 여공도 힘썼건만 무슨 죄가 진중(珍重)하여 일점 혈육이 없으니 육친무족 우리 신세 선영향화 누가 하며 사후감장 어이 하리. 명산대찰(名山大刹)에 신공이나 하여 남녀간 낳게 되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가군의 뜻이 어떠하오”
 
성참판 하는 말이
 
“일생 신세 생각하면 자네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을 낳을진대 무자(無子)할 사람이 있으리오”
 
하니 월매 대답하되
 
“천하대성(天下大聖) 공부자도 이구산(尼丘山)에 빌으시고 정나라 정자산은 우형산에 빌어 나계시고 아동방 강산을 이를진대 명산대천이 없을소냐. 경상도 웅천 주천의는 늦도록 자녀 없어 최고봉에 빌었더니 대명천자(大明天子) 나계시사 대명천지(大明天地) 밝았으니 우리도 정성이나 드려 보사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 꺾일소냐. 이날부터 목욕재계 정히 하고 명산승지(名山勝地) 찾아갈 제 오작교 썩 나서서 좌우산천 둘러보니 서북의 교룡산은 술해방을 막아 있고 동으로는 장림 수풀 깊은 곳에 선원사는 은은히 보이고 남으로는 지리산이 웅장한데 그 가운데 요천수는 일대 장강벽파 되어 동남으로 둘렀으니 별유건곤 여기로다. 청림(靑林)을 더위잡고 산수를 밟아 들어가니 지리산이 여기로다. 반야봉 올라 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명산대천 완연하다. 상봉에 단을 모아 제물을 진설하고 단하에 복지하여 천신만고 빌었더니 산신님의 덕이신지 이때는 오월 오일 갑자라. 한 꿈을 얻으니 서기 반공하고 오채 영롱하더니 일위 선녀청학을 타고 오는데 머리에 화관(花冠)이요 몸에는 채의(彩衣)로다. 월패 소리 쟁쟁하고 손에는 계화일지를 들고 당에 오르며 거수장읍하고 공순히 여쭈오되
 
“낙포의 딸이더니 반도 진상 옥경 갔다 광한전에서 적송자 만나 미진정회 하던 차에 시만함이 죄가 되어 상제 대로하사 진토에 내치시매 갈 바를 모르더니 두류산 신령(神靈)께서 부인 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며 품으로 달려들 새 학지고성은 장경고라. 학의 소리(에) 놀라 깨니 남가일몽이라. 황홀한 정신을 진정하여 가군과 몽사를 설화하고 천행으로 남자를 낳을가 기다리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十朔)이 당하매 일일은 향기 만실하고 채운이 영롱하더니 혼미 중에 생산하니 일개 옥녀(玉女)를 낳았나니 월매의 일구월심 바라던 마음 남자는 못 낳았으되 잠깐동안 풀리는구나. 그 사랑함은 어찌 다 형언(形言)하리. 이름을 춘향이라 부르면서 장중보옥같이 길러내니 효행(孝行)이 무쌍이요 인자함이 기린이라. 칠팔 세 되매 서책(書冊)에 착미하여 예모 정절을 일삼으니 효행을 일읍이 칭송(치) 아니할 이 없더라.
 
이때 삼청동(三淸洞) 이한림이라 하는 양반이 있으되 세대명가요 충신의 후예라. 일일은 전하께옵서 충효록(忠孝錄)을 올려 보시고 충효자를 택출하사 자목지관 임용하실 새 이한림으로 과천 현감에 금산 군수 이배하여 남원 부사 제수하시니 이한림이 사은숙배 하직하고 치행차려 남원부에 도임하여 선치민정(善治民情)하니 사방에 일이 없고 방곡의 백성들은 더디 옴을 칭송한다. 강구연월문동요라. 시화연풍하고 백성이 효도하니 요순시절이라.
 
이때는 어느 때뇨. 놀기 좋은 삼춘이라. 호연 비조 뭇 새들은 농초화답 짝을 지어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들어 온갖 춘정 다투는데 남산화발북산홍과 천사만사수양지에(서) 황금조는 벗 부른다. 나무나무 성림하고 두견 접동 다 지나니 일년지가절이라.
 
이때 사또 자제 이도령이 연광은 이팔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도량은 창해같고 지혜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일일은 방자 불러 말씀하되
 
“이 골 경처 어디매냐. 시흥춘흥(詩興春興) 도도하니 절승경처 말하여라.”
 
방자놈 여쭈오되
 
“글공부 하시는 도련님이 경처 찾아 부질없소.”
 
이도령 이르는 말이
 
“너 무식한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재사(文章才士)도 절승강산 구경하기는 풍월작문 근본이라. 신선도 두루 놀아 박람(博覽)하니 어이하여 부당하랴. 사마장경이 남으로 강호에 떠있다 대강(大江)을 거스를 제 광랑성파에 음풍이 노호하여 예로부터 가르치니 천지간 만물지변(萬物之變)이 놀랍고 즐겁고도 고운 것이 글 아닌 게 없느니라. 시중천자 이태백은 채석강에(서) 놀았었고 적벽강 추야월(秋夜月)에 소동파 놀았었고 심양강 명월에 백낙천 놀았었고 보은 속리 문장대에(서) 세조대왕(世祖大王) 놀으셨으니 아니 놀든 못하리라.”
 
이때 방자 도련님 뜻을 받아 사방 경개 말씀하되
 
“서울로 이를진대 자문 밖 내달아 칠성암 청련암 세검정과, 평양 연광정 대동루 모란봉, 양양 낙선대, 보은 속리 문장대, 안의 수승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가 어떠한 지 모르오나 전라도로 이를진대 태인 피향정, 무주 한풍루, 전주 한벽루 좋사오나 남원 경처 들어보시오. 동문 밖 나가시면 장림 숲 선원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시면 관왕묘(關王廟)는 천고 영웅 엄한 위풍 어제 오늘 같사옵고 남문 밖 나가시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 좋사옵고 북문 밖 나가시면 청천삭출 금부용 기벽하여 우뚝 섰으니 기암(奇巖) 둥실 교룡산성 좋사오니 처분대로 가사이다”
 
도련님 이르는 말씀이
 
“아! 말로 들어보더라도 광한루 오작교가 경개로다. 구경가자.”
 
도련님 거동 보소 사또전 들어가서 공순히 여쭈오되
 
“금일 일기 화난하오니 잠깐 나가 풍월음영 시 운목도 생각하고자 싶으오니 순성이나 하여이다.”
 
사또 대희(大喜)하여 허락하시고 말씀하시되
 
“남주 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되 시제(詩題)를 생각하라.”
 
도령 대답
 
“부교(父敎)대로 하오리다.”
 
물러나와
 
“방자야 나귀 안장 지워라.”
 
방자 분부 듣고 나귀 안장 지운다. 나귀 안장 지울 제 홍영자공 산호편 옥안 금천 황금륵 청홍사(靑紅絲) 고운 굴레 주락상모 더뻑 달아 층층 다래 은엽등자 호피(虎皮)도담에 전후걸이 줄방울을 염불법사(念佛法師) 염주 매달 듯
 
“나귀 등대하였소.”
 
도련님 거동 보소. 옥안선풍(玉顔仙風) 고운 얼굴 전반같은 채머리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워 궁초댕기 석황 물려 맵시 있게 잡아 땋고 성천수주 접동베 세백저 상침바지 극상세목겹버선에 남갑사대님 치고 육사단 겹배자 밀화단추 달아 입고 통행전을 무릎 아래 넌지시 매고 영초단허리띠 모초단도리낭을 당팔사 갖은 매듭 고를 내어 넌지시 매고 쌍문초긴 동정 중치막에 도포 받쳐 흑사(黑絲) 띠를 흉중에 눌러 매고 육분 당혜 끌면서
 
“나귀를 붙들어라.”
 
등자 딛고 선뜻 올라 뒤를 싸고 나오실 제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삼문 밖 나올 적에 쇠금부채 호당선으로 일광(日光)을 가리우고 관도성남 넓은 길에 생기 있게 나갈 제 취래양주하던 두목지(杜牧之)의 풍챌런가. 시시오불하던 주랑의 고음이라. 향가자맥춘성내요 만성군자수불애라. 광한루 섭적 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경개가 장히 좋다. 적성 아침 늦은 안개 떠 있고 녹수(綠樹)에 저문 봄은 화류동풍(花柳東風) 둘러 있다. 자각단루분조요요 벽방금전상영롱은 임고대를 이르는 것이고 요헌기구하처요는 광한루를 이르는 것이라. 악양루 고소대와 오초 동남수(東南水)는 동정호로 흐르고 연자 서북의 패택이 완연(宛然)한데 또 한 곳 바라보니 백백홍홍 난만(爛漫) 중에 앵무 공작 날아들고 산천 경개 둘러보니에굽은 반송(盤松)솔 떡갈잎은 아주 춘풍 못 이기어 흐늘흐늘 폭포 유수(流水) 시냇가의 계변화는 뻥긋뻥긋 낙락장송(落落長松) 울울하고 녹음방초승화시라. 계수(桂樹) 자단(紫壇) 모란 벽도(碧桃)에 취한 산색 장강(長江) 요천에 풍덩실 잠겨 있고 또 한 곳 바라보니 어떠한 일 미인이 봉(鳳)새 울음 한가지로 온갖 춘정(春情) 못 이기어 두견화 질끈 꺾어 머리에도 꽂아 보며 함박꽃도 질끈 꺾어 입에 함쑥 물어 보고 옥수나삼 반만 걷고 청산유수 맑은 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물 머금어 양수하며 조약돌 덥석 쥐어 버들가지 꾀꼬리를 희롱하니 타기황앵이 아니냐. 버들잎도 죽죽 훑어 물에 훨훨 띄워 보고 백설같은 흰나비 웅봉자접은 화수 물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황금같은 꾀꼬리는 숲숲이 날아든다. 광한 진경(珍景)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방가위지 호남의 제일성이로다. 오작교 분명하면 견우직녀 어디 있나. 이런 승지(勝地)에 풍월이 없을소냐. 도련님이 글 두귀를 지었으되
 
고명오작선이요 광한옥계루라.
 
차문천상수직녀요 지흥금일아견우라.
 
이때 내아에서 잡술상이 나오거늘 일배주 먹은 후에 통인 방자 물려주고 취흥이 도도하야 담배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거닐 제 경처(景處)의 흥에 겨워 충청도 고마 수영(水營) 보련암(寶蓮菴)을 일렀은들 이 곳 경처 당할소냐. 붉을 단(丹) 푸를 청(靑) 흰 백(白) 붉을 홍(紅) 고을고을이 단청(丹靑) 유막 황앵환우성은 나의 춘흥(春興) 도와 낸다. 황봉백접 왕나비는 향기 찾는 거동이라. 비거비래춘성내요 영주 방장 봉래산이 안하(眼下)에 가까우니 물은 보니 은하수요 경개는 잠깐 옥경이라. 옥경이 분명하면 월궁(月宮) 항아 없을소냐.
 
이때는 삼월이라 일렀으되 오월 단오일이렷다. 천중지가절이라.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서음률(詩書音律)이 능통하니 천중절을 모를소냐. 추천을 하려고 향단이 앞세우고 내려올 제 난초같이 고운 머리 두귀를 눌러 곱게 땋아 금봉채를 정제하고 나군을 두른 허리 미양의 가는 버들 힘이 없이 드리운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 아장 걸어 흐늘 걸어 가만가만 나올 적에 장림(長林) 속으로 들어가니 녹음방초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에 황금같은 꾀꼬리는 쌍거쌍래 날아들 제 무성한 버들 백척장고 높이 추천을 하려할 제 수화유문 초록 장옷 남방사홑치마 훨훨 벗어 걸어두고 자주영초 수당혜를 썩썩 벗어 던져두고 백방사(白紡絲) 진솔속곳 턱 밑에 훨씬 추켜올리고 연숙마 추천줄을 섬섬옥수 넌지시 들어 양수(兩手)에 갈라 잡고 백릉버선 두 발길로 섭적 올라 발구를 제 세류같은 고운 몸을 단정히 놀리는데 뒤 단장 옥(玉)비녀 은죽절과 앞치레 볼 것 같으면 밀화장도 옥장도(玉粧刀)며 광원사겹저고리 제색 고름에 태가 난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 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 앞 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위의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흔들흔들 오고갈 제 살펴보니 녹음 속의 홍상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백운간에 번갯불이 쏘는 듯 첨지재전홀언후라. 앞으로 얼른 하는 양은 가벼운 저 제비가 도화(桃花) 일점 떨어질 제 찾으려 하고 좇는 듯 뒤로 번듯 하는 양은 광풍에 놀란 호접 짝을 잃고 가다가 돌이키는 듯 무산선녀 구름 타고 양대(陽臺) 상(上)에 내리는 듯 나뭇잎도 물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실근
 
“이 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찔하냐. 그네줄 붙들어라.”
 
붙들려고 무수히 진퇴(進退)하며 한창 이리 노닐 적에 시냇가 반석(磐石) 상(上)에 옥비녀 떨어져 쟁쟁하고 비녀비녀 하는 소리 산호채를 들어 옥반을 깨뜨리는 듯 그 형용은 세상 인물 아니로다.
 
연자삼춘비거래라. 이도령 마음이 울적하고 정신이 어찔하여 별 생각이 다 나것다. 혼잣말로 섬어하되 오호에 편주 타고 범소백을 좇았으니 서시도 올 리 없고 해성 월야(月夜)에 옥장비가로 초패왕을 이별하던 우미인도 올 리 없고 단봉궐 하직하고 백룡퇴 간 연후에 독류청총 하였으니 왕소군도 올 리 없고 장신궁 깊이 닫고 백두음을 읊었으니 반첩여도 올 리 없고 소양궁 아침날에 시측하고 돌아오니 조비연도 올 리 없고 낙포선녀(洛浦仙女)인가 무산선녀(巫山仙女)인가. 도련님 혼비중천하여 일신이 고단이라 진실로 미혼지인이로다.
 
“통인아.”
 
“예.”
 
“저 건너 화류(花柳)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 하는 게 무엇인지 자세히 보아라.”
 
통인이 살펴보고 여쭈오되
 
“다른 무엇 아니오라 이 고을 기생 월매 딸 춘향이란 계집아이로소이다.”
 
도련님이 엉겁결에 하는 말이
 
“장히 좋다. 휼륭하다.”
 
통인이 알외되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 구실 마다하고 백화초엽에 글자도 생각하고 여공재질이며 문장을 겸전하여 여염처자와 다름이 없나이다.
 
도령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되
 
“들은 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라.”
 
방자놈 여쭈오되
 
“설부화용이 낭방(南方)에 유명키로 방 첨사 병부사(兵俯使) 군수(郡守) 현감(縣監) 관장(官長)님네 엄지발가락이 두 뼘 가웃씩 되는 양반 오입장이들도 무수히 보려 하되 장강의 색과 임사의 덕행(德行)이며, 이두의 문필이며 태사(太사)의 화순심(和順心)과 이비의 정절(貞節)을 품었으니 금천하지절색이요 만고여중군자오니 황공하온 말씀으로 초래하기 어렵나이다.”
 
도령 대소(大笑)하고
 
“방자야 네가 물각유주를 모르는도다. 형산백옥과 여수황금이 임자 각각 있느니다. 잔말 말고 불러오라.”
 
방자 분부 듣고 춘향 초래 건너갈 제 맵시 있는 방자녀석 서왕모 요지연에 편지 전하던 청조같이 이리저리 건너가서
 
“여봐라, 이 애 춘향아.”
 
부르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래어
 
“무슨 소리를 그 따위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놀래느냐.”
 
“이 애야, 말 마라. 일이 났다.”
 
“일이라니 무슨일.”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에 오셨다가 너 노는 모양 보고 불러오란 영이났다.
 
춘향이 화를 내어
 
“네가 미친 자식이로다.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 네가 내 말을 종달새 열씨 까 듯 하였나보다.”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가 없으되 네가 그르지 내가 그르냐. 너 그른 내력을 들어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추천을 할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추천하는 게 도리(道理)에 당연함이라.광한루 멀잖고 또한 이 곳을 논할진대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 방초는 푸(르)렀는데 앞 내 버들은 초록장 두르고 뒷 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둘러 한 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광풍을 겨워 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광한루 구경처(求景處)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제 외씨같은 두 발길로 백운간(白雲間)에 노닐 적에 홍상(紅裳) 자락이 펄펄 백방사(白紡紗) 속곳 갈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희뜩희뜩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실 제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잔말 말고 건너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일이라. 비단 나 뿐이랴. 다른 집 처자들도 예 와 함께 추천하였으되 그럴 뿐 아니라 설혹 내 말을 할 지라도 내가 지금 시사가 아니거든 여염(집) 사람을 호래척거로 부를 리도 없고 부른데도 갈 리도 없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 못 들은 바라.”
 
방자 이면에 볶이어 광한루로 돌아와 도련님께 여쭈오니 도련님 그 말 듣고
 
“기특한 사람이(로)다. 언즉시야로되 다시 가 말을 하되 이리이리 하여라.”
 
방자 전갈 모아 춘향에게 건너가니 그 새에 제 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간(母女間) 마주 앉아 점심밥이 방장이라. 방자 들어가니
 
“너 왜 또 오느냐.”
 
“황송(하)다. 도련님이 다시 전갈하시더라.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노라. 여가에 있는 처자 불러 보기 청문에 괴이(怪異)하나 혐의로 알지 말고 잠깐 와 다녀가라 하시더라.”
 
춘향의 도량한 뜻이 연분되려고 그러한 지 홀연이 생각하니 갈 마음이 나되 모친의 뜻을 몰라 침음양구에 말 않고 앉았더니 춘향모 썩 나 앉아 정신 없게 말을 하되
 
“꿈이라 하는 것이 전수이 허사(虛事)가 아니로다. 간 밤에 꿈을 꾸니 난데 없는 청룡(靑龍) 하나 벽도지에 잠겨 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자(夢字) 용 룡자(龍字) 신통하게 맞추었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 잠깐 가서 다녀오라.”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 제 대명전(大明殿) 대들보의 명매기 걸음으로 양지(陽地)마당의 씨암탉 걸음으로 백모래 바다 금자라 걸음으로 월태화용 고운 태도 완보로 건너갈 새 흐늘흐늘 월서시토성습보하던 걸음으로 흐늘거려 건너올 제 도련님 난간에 절반만 비껴 서서 완완히 바라보니 춘향이가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운지라. 도련님 좋아라고 자세히 살펴보니 요요정정하여 월태화용이 세상에 무쌍이라. 얼굴이 조촐하니 청강(淸江)에 노는 학이 설월(雪月)에 비침 같고 단순호치 반개하니 별도 같고 옥도 같다. 연지를 품은 듯 자하상 고운 태도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는 듯 취군이 영롱하여 문채는 은하수물결 같다. 연보를 정히 옮겨 천연히 누에 올라 부끄러이 서 있거늘 통인 불러
 
“앉으라고 일러라.”
 
춘향의 고운 태도 염용하고 앉는 거동 자세히 살펴보니 백색창파 새 비 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을 보고 놀라는 듯 별로 단장 한일 없이 천연한 국색이라. 옥안을 상대하니 여운간지명월이요 단순(丹脣)을 반개(半開)하니 약수중지연화로다. 신선을 내 몰라도 영주(瀛州)에 놀던 선녀 남원에 적거하니 월궁에(서) 모시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구나. 네 얼굴 네 태도는 세상 인물 아니로다.
 
이때 춘향이 추파를 잠깐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금세(今世)의 호걸(豪傑)이요 진세간 기남자라. 천정이 높았으니 소년공명 할 것이요. 오악이 조귀(朝歸)하니 보국충신 될 것이매 마음에 흠모하여 아미를 숙이고 염슬단좌 뿐이로다. 이도령 하는 말이
 
“성현(聖賢)도 불취동성이라 일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뇨?”
 
“성은 성(成)가옵고 연세(年歲)는 십육 세로소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허허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라. 성자(姓字)를 들어보니 천정일시 분명하다. 이성지합은 좋은 연분 평생동락(平生同樂)하여 보자. 너의 부모 구존하냐?”
 
“편모하(偏母下)로소이다.”
 
“몇 형제나 되느냐?”
 
“육십당년 나의 모친 무남독녀(無男獨女) 나 하나요.”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로다. 천정(天定)하신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년락(萬年樂)을 이뤄 보자.”
 
춘향이 거동 보소 팔자청산 찡그리며 주순을 반개(半開)하여 가는 목 겨우 열어 옥성으로 여쭈오되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烈女) 불경이부절은 옛글에 일렀으니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첩이라. 한 번 탁정한 연후에 인하여 버리시면 일편단심(一片丹心) 이내 마음 독숙공방(獨宿空房) 홀로 누워 우는 한(恨)은 이내 신세 내 아니면 누구일꼬 그런 분부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을 들어 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을 적에 금석뇌약 맺으리라. 네 집이 어디메냐.”
 
춘향이 여쭈옵되
 
“방자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 허허 웃고
 
“내 너더러 묻는 일이 허황하다.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 손을 넌지시 들어 가리키는데
 
“저기 저 건너 동산은 울울하고 연당은 청청(淸淸)한데 양어생풍하고 그 가운데 기화요초 난만(爛漫)하여 나무나무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하고 암상의 굽은 솔은 청풍(淸風)이 건듯 부니 노룡이 굼니는 듯 문 앞의 버들 유사무사 양유지요. 들쭉 측백 전나무며 그 가운데 행자목은 음양(陰陽)을 좇아 마주 서고 초당문전 오동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 으름 넌출 휘휘친친 감겨 단장 밖에 우뚝 솟았는데 송정 죽림(竹林)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게 춘향의 집입니다.”
 
도련님 이른 말이
 
“장원이 정결(淨潔)하고 송죽(松竹)이 울밀하니 여자 절행(節行) 가지로다.”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여쭈오되
 
“시속인심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겠(습)니다.”
 
도련님 그 말을 듣고
 
“기특하다 그럴 듯한 일이로다. 오늘 밤 퇴령 후에 너의 집에 갈 것이니 괄시나 부디 마라.”
 
춘향이 대답하되
 
“나는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 금야(今夜)에 상봉(相逢)하자.”
 
누에(서) 내려 건너가니 춘향모 마주 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냐. 도련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가겠노라 일어나니 저녁에 우리 집 오시마 하옵디다.”
 
“그래 어찌 대답하였느냐.”
 
“모른다 하였지요.”
 
“잘 하였다.”
 
이때 도련님이 춘향을 아연히 보낸 후에 미망이 둘 데 없어 책실로 돌아와 만사(萬事)에 뜻이 없고 다만 생각이 춘향이라. 말소리 귀에 쟁쟁 고운 태도 눈에 삼삼. 해지기를 기다릴 새. 방자 불러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동에서 아귀 트나이다.”
 
도련님 대노(大怒)하여
 
“이 놈 괘씸한 놈. 서(쪽)으로 지는 해가 동(쪽)으로 도로 가랴. 다시금 살펴보라.”
 
이윽고 방자 여쭈오되
 
“일락함지 황혼 되고 월출동령하옵내다.”
 
석반이 맛이 없어 전전반측 어이 하리. 퇴령을 기다리려 하고 서책을 보려 할 제 책상을 앞에 놓고 서책을 상고하는데 중용 대학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주역 고문진보 통 사략 이백(李白) 두시(杜詩) 천자(문)까지 내어 놓고 글을 읽을 새
 
“시전이라. 관관저구 재하지주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읽을 새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 재춘향(在春香)이로다. 그 글도 못 읽겠다.”
 
주역을 읽는데
 
“원은 형코 정코 춘향이 코 딱 댄 코 좋고 하니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등왕각이라. 남창은 고군이요 홍도는 신부로다. 옳다. 그 글 되었다.”
 
“맹자를 읽을 새 맹자 견양혜왕하신대 왕왈 수불원천리이래하시니 춘향이 보시러 오셨(습)니까.”
 
사략을 읽는데
 
“태고(太古)라. 천황씨는 이쑥덕으로 왕하여 세기섭제하니 무위이화(無爲而化)이라. 하여 형제 십이인이 각 일만팔천세하다.”
 
방자 여쭈오되
 
“여보 도련님. 천황씨가 목덕으로 왕이란 말은 들었으되 쑥떡으로 왕이란 말은 금시초문이오.”
 
“이 자식 네 모른다. 천황씨 일만팔천 세를 살던 양반이라 이가 단단하여 목덕을 잘 자셨거니와 시속(時俗) 선비들은 목떡을 먹겠느냐. 공자님께옵서 후생(後生)을 생각하사 명륜당에 현몽하고 시속 선비들은 이가 부족하여 목떡을 못 먹기로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하라 하여 삼백육십주 향교에 통문하고 쑥떡으로 고쳤느니라.”
 
방자 듣다가 말을 하되
 
“여보. 하느님이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거짓말도 듣겠소.”
 
또 적벽부를 들어 놓고
 
“임술지 추칠월 기망(壬戌之秋七月旣望)에 소자(蘇子) 여객(與客)으로 범주유어적벽지하(泛舟遊於赤壁之下)할 새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라.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천자(千字文)를 읽을 새
 
“하늘 천(天) 땅 지(地)”
 
방자 듣고
 
“여보. 도련님 점잖이 천자는 왠 일이요?”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의 본문(本文)이라. 양(梁)나라 주사봉(周捨奉) 주흥사가 하룻밤에 이 글을 짓고 머리가 희었기로 책 이름을 백수문이라. 낱낱이 새겨 보면 뼈똥 쌀 일이 많지야.”
 
“소인놈도 천자 속은 아옵니다.”
 
“네가 알더란 말이냐.”
 
“알기를 이르겠소.”
 
“안다 하니 읽어 봐라.”
 
“예 들으시오. 높고 높은 하늘 천(天) 깊고 깊은 땅 지(地) 홰홰친친 검을 현(玄) 불타다 누를 황”
 
“예 이놈. 상놈은 적실하다. 이놈 어디서 장타령 하는 놈의 말을 들었구나. 내 읽을 게 들어라. 천개자시생천하니 태극이 광대(廣大) 하늘 천(天), 지벽어축시하니 오행 팔괘로 땅 (地)지, 삼십삼천 공부공의 인심지시(人心指示) 검을 현(玄), 이십팔수 금목수화토지 정색 누를 황(黃), 우주일월(宇宙日月) 중화하니 옥우 쟁영 집 우(宇), 연대국도 흥 성 쇠 왕고래금(往古來今)에 집 주(宙), 우치홍수 기자 추에 홍범구주 넓을 홍(洪), 삼황오제 붕(崩)하신 후 난신적자 거칠 황(荒), 동방이 장차 계명(啓明)키로 고고천변일륜홍 번듯 솟아 날 일(日), 억조창생 경양가(擊壤歌)에 강구연월(康衢煙月)에 달 월(月), 한심 미월 시시(時時) 불어(나) 삼오일야에 찰 영(盈), 세상만사 생각하니 달빛과 같은지라 십오야 밝은 달이 기망(旣望)부터 기울 측(日仄), 이십팔수(二十八宿) 하도낙서 벌인 법(法) 일월성신(日月星辰) 별 진(辰), 가련금야숙창가라 원앙금침에 잘 숙(宿), 절대가인 좋은 풍류(風流) 나열춘추에 벌일 렬(列), 의의월색 야삼경에 만단정회(萬端情懷) 베풀 장(張), 금일한풍소소래하니 침실에 들거라 찰 한(寒), 베개가 높거든 내 팔을 베어라 이만큼 오너라 올 래(來), 에후로혀 질끈 안고 님 각에 드니 설한풍에도 더울 서(暑), 침실이 덥거든 음풍(陰風)을 취하여 이리저리 갈 왕(往), 불한불열 어느 때냐 엽락오동에 가을 추(秋), 백발이 장차 우거지니 소년풍도를 거둘 수(收), 낙목한풍(落木寒風) 찬바람 백설강산에 겨울 동(冬),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에 갈물 장(藏), 부용 작야 세우(細雨) 중에 광윤유태 부루 윤(潤), 이러한 고운 태도 평생을 보고도 남을 여(餘), 백년기약(百年期約) 깊은 맹서(盟誓) 만경창파(萬頃蒼波) 이룰 성(成), 이리저리 노닐 적에 부지세월 해 세(歲), 조강지처불하당아내 박대 못하나니 대전통편 법중 율(律), 군자호구(君子好逑) 이 아니냐 춘향입 내 입을 한테다 대고 쪽쪽 빠니 법중 려(呂)자 이 아니냐 애고애고 보고지고”
 
소리를 크게 질러 놓(으)니 이때 사또 저녁 진지를 잡수시고 식곤증(食困症)이 나계옵서 평상에 취침하시다 애고 보고지고 소리에 깜짝 놀래어
 
“이리 오너라.”
 
“예.”
 
“책방에서 누가 생침을 맞느냐 신다리를 주물렀냐. 알아(서) 들여라.”
 
통인 들어가
 
“도련님 웬 목통이오. 고함소리에 사또 놀라시사 염문하라 하옵시니 어찌 아뢰리까.”
 
딱한 일이로다. 남의 집 늙은이는 이농증도 있느니라만은 귀 너무 밝은 것도 예사 일 아니로다. 그러하다 하지마는 그럴 리가 왜 있을꼬. 도련님 대경(大驚)하여
 
“이대로 여쭈어라. 내가 논어라 하는 글을 보다가 차호(嗟乎)라 오로의구의(吾老矣久矣)라 몽불견주공(夢不見周公)이란 대문을 보다가 나도 주공을 보면 그리하여 볼까 하여 흥치(興致)로 소리가 높았으니 그대로만 여쭈어라.”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쭈오니 사또 도련님 승벽 있음을 크게 기뻐하여
 
“이리 오너라. 책방에 가 목낭청을 가만히 오시래라.”
 
낭청이 들어오는데 이 양반이 어찌 고리게 생겼던지 만큼 걸음쏙까지 근심이 담쏙 들었던 것이었다.
 
“사또 그 새 심심하지요.”
 
“아 게 앉소. 할 말 있네. 우리 피차 고우로서 동문수업(同門受業)하였거니와 아시에 글 읽기같이 싫은 것이 없건마는 우리 아(兒) 시흥 보니 어이 아니 기쁠손가.”
 
이 양반은 지여부지간에 대답하것다.
 
“아이 때 글 읽기같이 싫은 게 어디 있으리오.”
 
“읽기가 싫으면 잠도 오고 꾀가 무수하지. 이 아이는 글 읽기를 시작하면 읽고 쓰고 불철주야 하지.”
 
“예 그럽디다.”
 
“배운 바 없어도 필재 절등하지.”
 
“그렇지요. 점 하나만 툭 찍어도 고봉추석같고 한 일(一)을 그어놓(으)면 천리진운이요 갓머리는 작규첨이요 필법논지하면 풍랑뇌전이요 내리 그어 채는 획은 노송도괘절벽이라. 창과(戈)로 이를진대 바른 등 넌출같이 뻗어갔다. 도로 채는 데는 성난 쇠뇌끝 같고 기운이 부족하면 발길로 툭 차올려도 획은 획대로 되나니 글씨를 가만히 보면 획은 획대로 되옵디다.”
 
“글쎄 듣게. 저 아이 아홉살 먹었을 제 서울 집뜰에 늙은 매화 있는 고로 매화나무를 두고 글을 지어라 하였더니 잠시 지었으되 정성 들인 것과 용사비등하니 일람첩기라. 묘당의 당당한 명사 될 것이니 남면이북고하고 부춘추어일수하였데.”
 
“장래 정승하오리다.”
 
사또 너무 감격하여(라고)
 
“정승이야 어찌 바라겠나 만은 내 생전에 급제는 쉬 하리 만은 급제만 쉽게 하면 출육이야 범연히 지나겠나.”
 
“아니요. 그리 할 말씀이 아니라 정승을 못 하오면 장승이라도 되지요.”
 
사또가 호령하되
 
“자네 뉘 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 하나.”
 
“대답은 하였사오나 뉘 말인지 몰라요.”
 
그렇다고 하였으되 그게 또 다 거짓말이었다.
 
이때 이도령은 퇴령 놓기를 기다릴 제
 
“방자야.”
 
“예.”
 
“퇴령 놓았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더니 하인 물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등롱에 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 건너갈 제 자취없이 가만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상방에 불 비친다. 등롱을 옆에 껴라.”
 
삼문(三門) 밖 썩 나서 협로지간에 월색이 영롱하고 화간 푸른 버들 몇번이나 꺾었으며 투계소년 아이들은 야입청루하였으니 지체말고 어서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가련금야요적한데 가기물색 이 아니냐. 가소롭다 어주사는 도원길을 모르던가. 춘향 문전 당도하니 인적야심한데 월색은 삼경(三更)이라. 어약은 출몰하고 대접같은 금붕어는 임을 보고 반기는 듯 월하(月下)의 두루미는 흥을 겨워 짝 부른다.
 
이때 춘향이 칠현금을 비껴안고 남풍시를 희롱타가 침석(寢席)에 졸더니 방자 안으로 들어가되 개가 짖을가 염려하여 자취없이 가만가만 춘향 방 영창 밑에 가만히 살짝 들어가서
 
“이애 춘향아 잠 들었냐.”
 
춘향이 깜짝 놀래어
 
“네 어찌 오냐.”
 
“도련님이 와 계시다.”
 
춘향이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울렁울렁 속이 답답하여 부끄럼을 못 이기어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넌방 건너가서 저의 모친 깨우는데
 
“애고 어머니. 무슨 잠을 이다지 깊이 주무시오.”
 
춘향의 모 잠을 깨어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누가 무엇 달래었소.”
 
“그러면 어찌 불렀느냐.”
 
엉겹결에 하는 말이
 
“도련님이 방자 모시고 오셨다오.”
 
춘향의 모 문을 열고 방자 불러 묻는 말이
 
“누가 와야.”
 
방자 대답하되
 
“사또 자제 도련님이 와 계시오.”
 
춘향 어미 그 말 듣고
 
“향단아.”
 
“예.”
 
“뒤 초당에 좌석(座席) 등촉(燈燭) 신칙하여 보전하라.”
 
당부하고 춘향모가 나오는데 세상 사람이 다 춘향모를 일컫더니 과연이로다. 자고로 사람이 외탁을 많이 하는고로 춘향같은 딸을 낳았구나. 춘향모 나오는데 거동을 살펴보니 반백이 넘었는데 소탈한 모양이며 단정한 거동이 표표정정하고 기부가 풍영하여 복이 많은지라. 숫접고 점잔하게 발막을 끌어 나오는데 가만가만 방자 뒤를 따라온다.
 
이때 도련님이 배회고면하여 무료히 서 있을 제 방자 나와 여쭈오되
 
“저기 오는 게 춘향의 모로소이다.”
 
춘향의 모가 나오더니 공수하고 우뚝 서며
 
“그 새에 도련님 문안이 어떠하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의 모라지. 평안한가.”
 
“예 겨우 지내옵니다. 오실 줄 진정 몰라 영접이 불민(不敏)하오니다.”
 
“그럴 리가 있나.”
 
춘향모 앞을 서서 인도하여 대문 중문 다 지나서 후원을 돌아가니 연구한 별초당(別草堂)에 등롱을 밝혔는데 버들가지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 구슬발이 갈고랑이에 걸린 듯하고 우(右)편의 벽오동(碧梧桐)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래는 듯 좌(左)편에 섰는 반송(盤松) 청풍(淸風)이 건듯 불면 노룡(老龍)이 굼니는 듯 창전(窓前)에 심은 파초 일난초 봉미장은 속잎이 빼어나고 수심여주 어린 연꽃 물 밖에 겨우 떠서 옥로(玉露)를 받쳐 있고 대접같은 금붕어는 어변성룡하려 하고 때때마다 물결쳐서 출렁 툼벙 굼실 놀 때마다 조롱하고 새로 나는 연잎은 받을 듯이 벌어지고 급연삼봉 석가산은 층층이 쌓였는데 계하(階下)의 학 두루미 사람을 보고 놀래어 두 죽지를 떡 벌리고 긴 다리로 징검징검 끼룩 뚜르르 소리하며 계화(桂花) 밑에 삽살개 짖는구나. 그 중에 반갑구나 못 가운데 쌍 오리는 손님 오시노라 둥덩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다르니 그제야 저의 모친 영을 디디어서 사창을 반개하고 나오는데 모양을 살펴보니 뚜렷한 일륜명월 구름 밖에 솟아난 듯 황홀한 저 모양은 측량키 어렵도다. 부끄러이 당에 내려 천연히 섰는 거동은 사람의 간장을 다 녹인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더러 묻는 말이
 
“곤(困)치 아니하며 밥이나 잘 먹었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치 못하고 묵묵히 서 있거늘 춘향이 모가 먼저 당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차를 들어 권하고 담배 붙여 올리오니 도련님이 받아 물고 앉았을 제 도련님 춘향의 집 오실 때는 춘향에게 뜻이 있어 와 계시지 춘향의 세간 기물(器物) 구경온 바 아니로되 도련님 첫 외입이라. 밖에서는 무슨 말이 있을 듯 하더니 들어가 앉고 보니 별로이 할 말이 없고 공연히 천촉기가 있어 오한증이 들면서 아무리 생각하되 별로 할 말이 없는지라. 방중을 둘러보며 벽상(壁上)을 살펴보니 여간 기물 놓였는데 용장 봉장 가께수리 이럭저럭 벌였는데 무슨 그림장도 붙여있고 그림을 그려 붙였으되 서방 없는 춘향이요 학(學)하는 계집 아이가 세간기물과 그림이 왜 있을까만은 춘향 어미가 유명한 명기(名妓)라. 그 딸을 주려고 장만한 것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명필(名筆) 글씨 붙여있고 그 사이에 붙인 명화(名畵) 다 후리쳐 던져두고 월선도(月仙圖)란 그림 붙였으되 월선도 제목이 이렇던 것이었다.
 
상제고거강절조에 군신조회 받던 그림 청년거사 이태백(李太白)이 황학전 꿇어 앉아 황정경 읽던 그림, 백옥루 지은 후에 자기 불러 올려 상량문 짓던 그림 칠월 칠석 오작교(烏鵲橋)에 견우직녀(牽牛織女) 만나는 그림, 광한전 월명야에 도약하던 항아(姮娥) 그림, 층층이 붙였으되 광채가 찬란하여 정신이 산란한지라 또 한 곳 바라보니 부춘산(富春山) 엄자릉은 간의대부 마다 하고 백구로 벗을 삼고 원학으로 이웃삼아 양구를 떨쳐 입고 추(秋) 동강 칠리탄에 낚시줄 던진 경(景)을 역력히 그려 있다. 방가위지선경이라. 군자호구(君子好逑) 놀 데로다. 춘향이 일편단심 일부종사 하려 하고 글 한 수를 지어 책상 위에 붙였으되,
 
대운춘풍죽이요 분향야독서라.
 
기특하다 이 글 뜻은 목란의 절개(節槪)로다.
 
이렇듯 치하(致賀)할 제 춘향 어미 여쭈오되,
 
“귀중하신 도련님이 누지에 욕림하시니 황공감격하옵니다.
 
도련님 그 말 한 마디에 말 궁기가 열리었지.
 
“그럴 리가 왜 있는가. 우연히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연련히 보내기로 탐화봉접 취한 마음 오늘 밤에 오는 뜻은 춘향 어미 보러 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과 백년 언약을 맺고자 하니 자네의 마음이 어떠한가.”
 
춘향 어미 여쭈오되
 
“말씀은 황송하오나 들어 보오. 자하(紫霞)골 성참판(成參判) 영감이 보후로 남원에 좌정하였을 때 소리개를 매로 보고 수청을 들라 하옵기로 관장(官長)의 영을 못 어기어 모신 지 삼삭(三朔)만에 올라가신 후로 뜻밖에 포태하여 낳은 게 저 것이라. 그 연유(緣由)로 고목하니 젖줄 떨어지면 데려가련다 하시더니 그 양반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니 보내질 못하옵고 저 것을 길러낼 제 어려서 잔병조차 그리 많고 칠세에 소학 읽혀 수신제가 화순심(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씨가 있는 자식이라 만사를 달통(達通)이요 삼강행실 뉘라서 내 딸이라 하리요. 가세(家勢)가 부족하니 재상가(宰相家) 부당(不當)이요 사서인 상하불급 혼인이 늦어가매 주야로 걱정이나 도련님 말씀은 잠시 춘향과 백년기약한단 말씀이오나 그런 말씀 말으시고 놀으시다 가옵소서.”
 
이 말이 참말이 아니라 이도련님 춘향을 얻는다 하니 내두사를 몰라 뒤를 눌러 하는 말이었다. 이도령 기가 막혀
 
“호사에 다마로세. 춘향도 미혼전(未婚前)이요 나도 미장전이라. 피차 언약이 이러하고 육례는 못할 망정 양반의 자식이 일구이언을 할 리 있나.”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또 내 말 들으시오. 고서(古書)에 하였으되 지신은(知臣)은 막여주(莫如主)요 지자(知子)는 막여부(莫如父)라 하니 지녀(知女)는 모(母) 아닌가. 내 딸 심곡 내가 알 지. 어려(서)부터 결곡한 뜻이 있어 행여 신세를 그르칠까 의심이요 일부종사하려 하고 사사이 하는 행실 철석같이 굳은 뜻이 청송(靑松), 녹죽(綠竹), 전나무 사시절(四時節)을 다투는 듯 상전벽해 될 지라도 내 딸 마음 변할손가. 금은(金銀), 오촉지백이 적여구산이라도 받지 아니할 터이요, 백옥같은 내 딸 마음 청풍인들 미치리요. 다만 고의(古義)를 효칙코자 할 뿐이온데 도련님은 욕심부려 인연을 맺었다가 미장전(未丈前) 도련님이 부모 몰래 깊은 사랑 금석(金石)같이 맺었다가 소문 어려 버리시면 옥(玉)결같은 내 딸 신세 문채 (文采) 좋은 대모 진주 고운 구슬 구멍노리 깨어진 듯 청강(淸江)에 놀던 원앙조(鴛鴦鳥)가 짝 하나를 잃었은들 어이 내 딸 같을손가.도련님 내정이 말과 같을진대 심량하여 행하소서.”
 
도련님 더욱 답답하여
 
“그는 두 번 염려하지 마소. 내 마음 헤아리니 특별 간절 굳은 마음 흉중에 가득하니 분의는 다를망정 저와 내가 평생기약 맺을 제 전안 납폐 아니 한들 창파같이 깊은 마음 춘향사정 모를손가.”
 
이렇듯이 이같이 설화(說話)하니 청실홍실 육례 갖춰 만난대도 이 위에 더 뾰족할까.
 
“내 저를 초취같이 여길 테니 시하라고 염려 말고 미장전도 염려 마소. 대장부 먹는 마음 박대 행실 있을손가. 허락만 하여 주소.”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몽조가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짐작하고 흔연히 허락하며
 
“봉(鳳)이 나매 황(凰)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 나고 남원에 춘향 나매 이화춘풍 꽃다웁다. 향단아 주반 등대하였느냐.”
 
“예.”
 
대답하고 주효를 차릴 적에 안주 등물 볼 것 같으면 괴임새도 정결하고 대(大)양푼 가리찜, 소(小)양푼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탕에 동래(東萊) 울산(蔚山) 대전복 대모 장도 드는 칼로 맹상군(孟嘗君)의 눈썹처럼 어슷비슷 오려 놓고, 염통산적, 양볶이와 춘치자명 생치 다리, 적벽 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률 숙률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준시 앵두 탕기같은 청술레를 칫수있게 괴었는데 술병 치레 볼 것 같으면 티끌 없는 백옥병과 벽해수상 산호병과 엽락금정 오동병과 목 긴 황새병 자라병 당화병 쇄금병 소상동정 죽절병 그 가운데 천은 알안자 적동자 쇄금자를 차례로 놓았는데 구비함도 갖을시고. 술 이름을 이를진대 이적선 포도주와 안기생 자하주와 산림처사(山林處士) 송엽주와 과하주 방문주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金露酒) 팔팔 뛰는 화주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 골라내어 알안자 가득 부어 청동화로(靑銅火爐) 백탄 불에 남비 냉수 끓는 가운데 알안자 둘러 불한불열(不寒不熱) 데어 내어 금잔 옥잔(玉盞) 앵무배를 그 가운데 데웠으니 옥경 연화(蓮花) 피는 꽃이 태을선녀 연엽선 뜨듯 대광보국 영의정(領議政) 파초선(芭焦船) 뜨듯 둥덩실 띄워놓고 권주가 한 곡조에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라.
 
이도령 이른 말이
 
“금야(今夜)에 하는 절차 보니 관청(官廳)이 아니거든 어이 그리 구비한가.”
 
춘향 모 여쭈오되
 
“내 딸 춘향 곱게 길러 요조숙녀 군자호구 가리어서 금슬우지 평생동락하올 적에 사랑에 노는 손님 영웅호걸 문장들과 죽마고우 벗님네 주야로 즐기실 제 내당의 하인 불러 밥상 술상 재촉할 제 보고 배우지 못하고는 어이 곧 등대하리. 내자가 불민하면 가장(家長) 낯을 깎음이라. 내 생전 힘써 가르쳐 아무쪼록 본받아 행하라고 돈 생기면 사 모아서 손으로 만들어서 눈에 익고 손에도 익히라고 일시(一時) 반 때 놓지 않고 시킨 바라. 부족타 말으시고 구미대로 잡수시오.”
 
앵무배 술 가득 부어 도련님께 드리오니 도령 잔 받아 손에 들고 탄식하여 하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할진대는 육례를 행할 터나 그러질 못하고 개구멍 서방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랴. 이애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이 술을 대례 술로 알고 먹자.”
 
일배주 부어 들고
 
“너 내 말 들어봐라. 첫째 잔은 인사주요 둘째 잔은 합환주라. 이 술이 다른 술 아니라 근원근본 삼으리라. 대순의 아황(娥皇) 여영(女英) 귀히귀히 만난 연분 지중타 하였으되 월로의 우리 연분 삼생가약 맺은 연분 천만년(千萬年)이라도 변치 아니할 연분 대대로 삼태육경 자손이 많이 번성하여 자손 증손(曾孫) 고손(高孫)이며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죄암죄암 달강달강 백세상수하다가(서) 한날 한시 마주 누워 선후없이 죽게 되면 천하에 제일가는 연분이지.”
 
술잔 들어 잡순 후에
 
“향단아 술 부어 너의 마누라께 드려라. 장모, 경사(慶事) 술이니 한 잔 먹소.”
 
춘향 어미 술잔 들고 일희일비하는 말이
 
“오늘이 여식의 백년지고락(百年之苦樂)을 맡기는 날이라. 무슨 슬픔 있으리까마는 저것을 길러낼 제 애비 없이 설이 길러 이때를 당하오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여 비창(悲愴)하여이다.”
 
도련님 이른 말이
 
“이왕지사(已往之事) 생각 말고 술이나 먹소.”
 
춘향 모 수삼배(數三杯) 먹은 후에 도련님 통인 불러 상 물려 주면서
 
“너도 먹고 방자도 먹여라.”
 
통인 방자 상 물려 먹은 후에 대문 중문 다 닫치고 춘향 어미 향단이 불러 자리 포진(鋪陳)시킬 제 원앙금침 잣베개와 샛별같은 요강 대야 자리포진을 정히 하고
 
“도련님 평안히 쉬옵소서. 향단아 나오너라. 나하고 함께 자자.”
 
둘이 다 건너갔구나.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는냐. 사양을 받으면서 삼각산(三角山) 제일봉(第一峰) 봉학 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를 에구부시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纖纖玉手) 바듯이 겹쳐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쏙 안고
 
“나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綠水)에 홍련화(紅蓮花) 미풍(微風) 만나 굼니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東海) 청룡(靑龍)이 굽이를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荊山)의 백옥(白玉)덩이 이 위에 비할소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들어 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골즙낼 제 삼승 이불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 진진한 일이야 오죽하랴.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맛이 간간 새로워 부끄럼은 차차 멀어지고 그제는 기롱(譏弄)도 하고 우스운 말도 있어 자연 사랑가(歌)가 되었구나. 사랑으로 노는데 똑 이 모양으로 놀던 것이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칠백 월하초(月下初)에 무산(巫山)같이 높은 사랑,
목단무변수에 여천창해같이 깊은 사랑,
옥산전 달 밝은데 추산천봉 완월 사랑,
증경학무하올 적 차문취소하던 사랑,
유유낙일 월렴간에 도리화개 비친 사랑,
섬섬초월 분백한데 함소함태 숱한 사랑,
월하(月下)에 삼생(三生)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夫婦) 사랑,
화우동산 목단화(牧丹花)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은하(銀河) 직녀(織女) 직금같이 올올이 이은 사랑,
청루미녀 침금(枕衾)같이 혼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 수양같이 청처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 노적같이 담불담불 쌓인 사랑,
은장 옥장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 봄바람에 넘노나니 황봉백접(黃蜂白蝶) 꽃을 물고 즐긴 사랑,
녹수청강(綠水淸江) 원앙조격(格)으로 마주 둥실 떠 노는 사랑,
연년(年年) 칠월 칠석야(夜)에 견우직녀(牽牛織女)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이가 팔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 초패왕(楚覇王)이 우미인(虞美人) 만난 사랑,
당나라 당명황이 양귀비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나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 한들 팔 곳이 어디 있어.
생전 사랑 이러하고 어찌 사후(死後) 기약 없을소냐.
너는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 되되 땅 지(地)자 그늘 음(陰)자 아내 처(妻)자 계집 녀(女)자 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 되되 하늘 천(天)자 하늘 건(乾) 지아비 부(夫) 사내 남(男) 아들 자(子) 몸이 되어
계집 녀(女) 변(邊)에다 딱 붙이면 좋을 호(好)자로 만나 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
또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 청계수(淸溪水) 옥계수(玉溪水) 일대장강 던져두고
칠년대한 가물 때도 일상 진진 추져 있는 음양수(陰陽水)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되 두견조도 될라 말고
요지 일윌(日月) 청조(靑鳥) 청학(靑鶴) 백학(白鶴)이며 대붕조 그런 새가 될라 말고
쌍거쌍래(雙去雙來) 떠날 줄 모르는 원앙조란 새가 되어
녹수(綠水)에 원앙격(格)으로 어화둥둥 떠 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 아니 될라오.”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경주(慶州) 인경도 될라 말고 전주(全州) 인경도 될라 말고 송도(松都) 인경도 될라 말고 장안 종로(鐘路) 인경 되고 나는 죽어 인경 망치 되어 삼십삼천(三十三千) 이십팔수(二十八宿)를 응하여 길마재 봉화 세 자루 꺼지고 남산(南山) 봉화 두 자루 꺼지면 인경 첫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다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 뎅 도련님 뎅이라 만나 보자꾸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방아 확이 되고 나는 죽어 방아 고가 되어 경신년 경신일 경신시에 강태공 조작 방아 그저 떨거덩 떨거덩 찧거들랑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사랑이야.”
 
춘향이 하는 말이
 
“싫소. 그것도 내 아니 될라오.”
 
“어찌하여 그 말이냐.”
 
“나는 항시 어찌 이생이나 후생(後生)이나 밑으로만 되라니까 재미없어 못 쓰겠소.”
 
“그러면 너 죽어 위로 가게 하마. 너는 죽어 돌매 윗짝이 되고 나는 죽어 밑짝 되어 이팔청춘 홍안미색들이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맷대를 잡고 슬슬 두르면 천원지방 격(格)으로 휘휘 돌아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싫소 그것도 아니 될라오. 위로 생긴 것이 부아 나게만 생기었소. 무슨 년의 원수로서 일생(一生) 한 구멍이 더하니 아무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명사십리 해당화가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나는 네 꽃송이 물고 너는 내 수염 물고 춘풍(春風)이 건듯 불거든 너울너울 춤을 추고 놀아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내 간간 사랑이지.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이 모두 내 사랑같으면 사랑 걸려 살 수 있나. 어화 둥둥 내사랑 내 예쁜 내 사랑이야. 방긋방긋 웃는 것은 화중왕 모란화가 하룻밤 세우(細雨) 뒤에 반만 피고자 한 듯 아무리 보아도 내 사랑 내 간간이로구나. 그러면 어쩌잔 말이냐. 너와 나와 유정(有情)하니 정자(情字)로 놀아보자. 음상동하여 정자 노래나 불러보세.”
 
“들읍시다.”
 
“내 사랑아 들어봐라. 너와 나와 유정하니 어이 아니 다정하리. 담담장강수 유유에 원객정 하교에 불상송 강수원함정 송군남포불승정 무인불견송아정 한태조 희우정, 삼태육경(三台六卿) 백관조정, 도량 청정, 각씨 친정(親庭) 친고통정, 난세평정 우리 둘이 천년인정(千年人情), 월명성희 소상동정(瀟湘洞庭), 세상만물 조화정 근심걱정, 소지 원정 주어 인정, 음식투정 복(福)없는 저 방정, 송정 관정 내정 외정, 애송정 천양정 양귀비 침향정, 이비(二妃)의 소상정(瀟湘亭), 한송정 백화만발 호춘정(好春亭), 기린토월 백운정(白雲亭), 너와 나와 만난 정(情). 일정 실정 논지하면 내 마음은 원형이정(元亨利貞), 네 마음은 일편탁정, 이같이 다정타가 만일 즉 파정하면 복통절정 걱정되니 진정으로 원정(原情)하잔 그 정자(情字)다.”
 
춘향이 좋아라고 하는 말이
 
“정(情) 속은 도저하오. 우리집 재수있게 안택경이나 좀 읽어주오.”
 
도련님 허허 웃고
 
“그 뿐인 줄 아느냐. 또 있지야. 궁자(宮字) 노래를 들어보아라.”
 
“애고 얄궂고 우습다. 궁자 노래가 무엇이오.”
 
“네 들어 보아라. 좋은 말이 많으니라. 좁은 천지(天地) 개탁궁, 뇌성벽력(雷聲霹靂) 풍우(風雨) 속에 서기(瑞氣) 삼광 풀려 있는 엄장하다. 창합궁, 성덕(聖德)이 넓으시사 조림이 어인 일고. 주지객 운성하던 은왕의 대정궁(大庭宮), 진시황 아방궁, 문천하득하실 적에 한태조(漢太祖) 함양궁, 그 곁에 장락궁, 반첩여(班첩여)의 장신궁, 당명황제(唐明皇帝) 상춘궁(賞春宮), 이리 올라 이궁 저리 올라서 별궁, 용궁(龍宮) 속의 수정궁, 월궁(月宮) 속의 광한궁(廣寒宮), 너와 나와 합궁하니 평생 무궁이라. 이 궁(宮) 저 궁(宮) 다 버리고 네 양각 새 수룡궁(水龍宮)에 나의 심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말으시오.”
 
“그게 잡담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업음질이나 하여보자.”
 
“애고 참 잡상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하여요.”
 
업음질 여러번 한성부르게 말하던 것이었다.
 
“업음질 천하 쉬우니라. 너와 나와 활씬 벗고 업고 놀고 안고도 놀면 그게 업음질이지야.”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 벗겠소.”
 
“에라 요 계집아이야 안 될 말이로다. 내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훨씬 벗어 한 편 구석에 밀쳐 놓고 우뚝 서니 춘향이 그 거동을 보고 삥긋 웃고 돌아서며 하는 말이
 
“영락없는 낮도깨비 같소.”
 
“오냐 네 말 좋다. 천지만물이 짝 없는게 없느니라. 두 도깨비 놀아보자.”
 
“그러면 불이나 끄고 노사이다.”
 
“불이 없으면 무슨 재미 있겠느냐. 어서 벗어라 어서 벗어라.”
 
“애고 나는 싫어요.”
 
도련님 춘향 옷을 벗기려 할 제 넘놀면서 어룬다.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없어 먹든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는 듯 북해흑룡(北海黑龍)이 여의주를 입에다 물고 채운간에 넘노는 듯 단산 봉황(鳳凰)이 죽실 물고 오동(梧桐) 속에 넘노는 듯 구고 청학(靑鶴)이 난초를 물고서 오송간(梧松間)에 넘노는 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다 담쏙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귓밥도 쪽쪽 빨며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朱紅)같은 혀를 물고 오색단청 순금장 안에 쌍거쌍래 비둘기같이 꾹꿍 끙끙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쏙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저고리 치마 바지 속곳까지 활씬 벗겨놓으니 춘향이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았을 제 도련님 답답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이 복짐하여 구슬땀이 송실송실 앉았구나.
 
“이애 춘향아 이리 와 업히거라.”
 
춘향이 부끄러하니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왕에 다 아는 바니 어서 와 업히거라.”
 
춘향을 업고 치키시며
 
“어따 그 계집아이 똥집 장히 무겁다. 네가 내 등에 업히니까 마음이 어떠하냐?”

 

고전소설

 

열녀춘향수절가의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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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전문 보기 - 열녀춘향수절가(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상)

1 숙종대왕(肅宗大王) 즉위(卽位) 초에 성덕이 넓으시사 성자성손은 계계승승하사 금고옥적은 요순시절이요 의관문물은 우탕의 버금이라. 좌우보필(左右輔弼)은 주석지신이요 용양호위는 간성지장이라. 조정(朝廷)에 흐르는 덕화(德化) 향곡에 퍼졌으니 사해(四海) 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려있다. 충신은 만조하고 효자열녀 가가재라. 미재미재라 우순풍조하니 함포고복 백성들은 처처(處處)에 격양가라.   2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으되 삼남의 명기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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